[토론의 사회학] 주제 접근에 대한 간략한 방법론

아흐리만의 베복 비판 자격 논쟁의 리플들을 보고 잠깐 들은 생각.

서론에 내 글 퍼지 말라라고 밝히고 있는데, 적절했다. 난 베복이 누군지도 모르고 DJ DOC도 모른다. 남미 출신이라 한국 가요게에서 가장 최신이라고 귀동냥 해본게 신화 정도다. 하지만 아흐리만의 글은 지금 네이버 쪽에서 이어지고 있는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나 있고, 그의 글에 이은 리플들이 이를 입증한다.

철학쪽 사람들은 현상에 대해 생각을 할때 자주 이를 바탕으로 모델을 만들어서 이론화 시키자라는 유혹에 빠진다. (안 그럼 왜 철학 했겠냐)

그의 글을 읽어보면, 화두는 소소한 주장에 있지 않고 (예시를 위해 사용되긴 하지만) 다만 구조적 비평, 즉 논쟁이 논리적이지 않고, 논쟁에 대해 돌아오는 답변도 마구잡이이며, 하여간 지켜보기 피곤한 글들이다 라는대에 있다. 좀 생각하며 글을 써라 라는 충고 대용으로도 돼겠다. (내가 철학쪽에 발을 담가봐서 이렇게 읽히나?)

난 이럴때 저 판에 뛰어들어서 꼭 논쟁의 구조를 합리적으로 개혁해야지 하는 충동을 느낀다. 그리고 오프의 경우 여럿 이슈에 뛰어들어서 구조적 (process적) 합리성을 부르짖은 적도 많다. 근데 이게 항상 실패다. 토론이 차가워지고, 끝내 사람들이 떠난다. 내 생각엔 원래 비이성적 시간때우기로 특별히 밀어둔 공간이 사람의 정신 건강을 위해 꼭 존재해야 하는 것 같다. 술마시러 가서 하는 토론은 얼굴 붉히며 해야 하고, 욕의 논리로 전개되어도 그게 술자리니까 용납되는 현상.

모 별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게 바로 라칸이 이야기하는 (불가능한) 의사소통 구조의 jouissance (이걸 사전에서 찾아봤는데.. 희열이라? 원래 jouissance도 성적 암시가 담겨저 있는 것인가?), 즉 petit a[utre]가 아닌가.

근데 여기에 아흐리만이 냉장고 같은 논리학을 가지고 뛰어든게 아닌가. (discouse of the university가 될려나?) 이거, 아무데도 못 간다. 자 리플 보시라. 리플 1: 왜 그리들 싸우냐 짜증나네 / 리플 2: 음악이란거 별건가 / 리플 3: 원 쟁점자들 (네이버에 글을 쓴..)과 베복/DJ 에 대한 인신 공격 / 리플 4: 원 쟁점자들의 논리 복제 (베복이 나쁘다나 어쩌다나..). 이게 죄다 현 논쟁의 내용에 해당한다. 근데 원래 글은 논쟁의 구조를 비판했거등? 맥락 제대로 잡은 이가 없다. 이중 요즘 인기 있는 xx 가 별거냐 라는 마구잡이대중주의자 (리플 2)를 집어서 아흐리만이 다시 자신의 논점으로 끌고 오자 (비평의 방식이 잘못되서 논쟁이란게 욕플로 치달리지 않느냐..라는) 달린 리플이 또다시 4번으로 돌아가는 꼴이다.

대책 없다. 사람들이 내용에 대해 치고박고 하자고 맘잡고 글을 읽는 한 현 논쟁구조를 벗어나려는 모든 시도는 현 논쟁구조 내에서 재해석 되고, 재배치된다. 그리고 이건 사람들이 인식 수준이 낮은 것도 아니요, 현안이 너무 감정적 요소를 많이 담고 있어서 내용에 매달리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현상으로 특정 토론은 내용만 가지고 논쟁해야 정신이 건강하다는 것 같다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아흐리만 저 글 네이버에 안 올린것 잘했다. 근데, 미디오 몹에 올려봤자 삽질 밖에 되나. 이건 매체의 한계가 아닌 것 같아. 나 같이 관심 없는 자는 지나가고, 관심 있으면 글의 논점이 안 보이게 인식이 고정되어 있다.

고로, 글을 제대로 쓰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글은 읽히기 위해 쓰이는 것이다; 현존하는 사회/인식적 틀 속에서 적절한 위치를 못 찾은 글은 정력낭비다.

그런 의미에서, 내 트랙백의 위치는 뭘까. 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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