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헤게모니 세력들의 유기적 결합

술이부작님의 “정치와 경제의 민주적 통제” 에 트랙백 합니다. 전 이렇게 꼭 집어주는 글이 제일 좋습니다 ^^

답하는 것이 젤 쉬우니까, 우선 답부터 하구, 그리고 한번 들어본 가능성있는 반자본주의 대안을 제시해보겠습니다.

우선 “결론만 다를뿐 두 글 다 [정치상의 민주주의는 경제사회주의를 이끌어낸다] 라는 전제에 동의한다” 라는 님의 분석에 반대 의견 제시합니다.

제 글부터 시작하죠.

1. 사유. 님의 지적이 맞습니다. 제가 한국어가 딸려서리.. “사유”를 “소유”로 바꾸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세번째 단락은 제가 Svinna님에게 이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감하는 전제를 제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다시 설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역 주민의 공헌이 있었냐 없었냐는 전체맥락에서 중요하지가 않지만 잠시 짚고 넘어가자면,

(이 부분은 뛰어넘으셔도 됨)
“궁극적으로” 노동자의 기여다라는 전개에 의이 있습니다. 노동의 결실이 누구에게 속하느냐라는 문제를 “궁극적으로” 라는 조건을 붙여 제시하면 아무래도 답이 하나로 나올 것 같지 않습니다. 인과관계 해석의 문제죠. 자본가의 입장에선 “아무래도 내 투자가 없다면 암것도 못했을것 아니냐”이고, 정부에선 “우리가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면..” 등등. 이를 회피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 [관계] 입니다. 여기서 전 아주 특수한 소유 (기업)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그에 상당하는 인간 노동과 (직접적인) 관계가 필수적이지 않겠느냐 라는 것이 제 생각이었고, 이에 해당하는 것은 노동자들과 기업이 제대로 성장하기 까지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며 기업을 자신들의 공동체 일부로 생각해오고 실제로 출퇴근 하는 노동자들과 관계를 만들어간 (20분짜리 점심이라든가, 퇴근길 술집이라든가, 지역 신문 칼럼 기고라든가..) 지역주민들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예로는 마이클 모어의 “Roger and Me”에 나온 Flint시와 GM 회사의 관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유의 개념에 역사성을 집어넣으려는 일환입니다. 모 일반 소유에는 해당이 되지 않을 것 같으니 이쯤하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Svinna님과 이견이 없는 부분이니.

2. 성공 신화… 그렇군요. Svinna님의 글을 좀 건성으로 읽었습니다. 이것은 말이 되는 소리야, 암… 끝까지 안 읽어도 동의할수 있지, 하면서 말이죠.

3. 정치와 경제의 본질. 또 님의 지적이 맞습니다요. 변명하자면 Svinna 님은 정치쪽에서 오시느라 “정치와 경제는 서로 다른 그 무엇이다”라는 , 지배적인 논리를 해체하느라 애쓰시는데, 저는 인류학쪽에서 놀기 때문에 “정치와 경제는 오직 사회의 일부분일 뿐이고 그것을 떼네어서 분석하는 것은 맥락을 가리기 때문에 헛수고이다” 라는 논지에서 출발, 어떠한 형태의 정치/경제를 따로 이야기 하는 분석이라도 좀 삐딱하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게 해석에 관한 제 의견이구요, 분석으로 넘어가자면

1. 성공신화. 전 허위의식 이란, 사회주의의 독일/영국에서 실패와 농민사회 러시아에서의 성공을 설명하는 이론이 있다는 것만 알지 Lukacs 를 읽어보지 못해서 그 논리전개가 어떻게 되는지 모릅니다. 반박해야 할 것은 두가지인데, 하나는 신화가 까발겨질수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또 하나는 “프로파간다의 존재를 이유로 자본주의의 영속성을 주장한다”라는 지거입니다.

1.a. 신화는 해체될수 있는가. 성공신화는 현대사회학쪽에서 흘려들은 것을 가져온 것이구요. 글쎄, 지젝이 이렇게 말한 것 같지만, 이념이란 것은 사회적 사실 (social fact)를 가지고 “그거 거짓이야”라고 외친다 해서 공중분해 되는 것이 아니라죠. 사회 구조상 지식의 장벽이 (거시경제같은 분약에서…) 존재하는 한, 신화는 재생산 되거든요. 고대 사회부터 신화라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담론으론 설명되지 않는 (스페인에서 흰살갗 정복자들이 왔다거나..) 현상들을 체계적인 논리에 담아내려는 노력의 결과이거든요. 구체적으로 도데체 왜 난 뼈빠지게 일해도 돈을 못 벌고, 요즘에 자서전을 쓴 모 기업 회장은 일해서 돈을 버는데 성공했지? 아하, 갸는 나보다 더 열심히 일했구나. 나도 열심히 오버타임 못 받아도 불평않고 일해야겠다.. 이런 류의 성공신화가 판을 치다가, 그게 먹히지 않으면 (님의 말처럼 “다 뻥이야”라고 소리지르고 다니는 선지자가 출현했다고 치죠) 교육을 잘 받아서 일도 머리 굴려가며 할 일이라든지 (MBA, 영어 과외), 아님 특정 기술을 잘 사용해야 한다든지 (인터넷, 재태크), 변화무쌍한 성공신화는 끝이 없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신화의 구조입니다. 한국서 70년대 사회가 그런대로 통제되어 있던 상황 아래서는 열심히 일하자류가, 90년대 사회가 개방되면서 교육 수준 (학위 또는 외국어등등)을 높이자, 그리고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해서 대중의 경제 지식 수준이 높아지자 아주 전문가 분야로 (e-비즈니스등) 이동해가는 신화의 특성은 항상 “그 너머”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에 무엇인가 2%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인민. 그 감수성에 이름을 같다부쳐주는것이죠.

말씀하신 선지자가 실존 특정인물을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의례 매체에서 신화의 허구를 지적하고 나서면, 신화로 돈버는 재태크 저자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증명해라” 하겠지요. 그런데 의식(cognitive)구조 특성상 이를 무시하면 논쟁에서 지는 것이고, 특정 신화의 허구성을 조목조목 비판하면 신화의 이념성에 말려드는 것이죠. 사회 모순 구조는 그 자체로 윤리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구조)을 앎으로 신화가 뻥이다 하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을것 같아요.

그런데, 1.a.의 결론과 상관없이 님의 논리는 1.b. 만으로 반박이 가능합니다. (사실 1.a. 는 쓰면서 스스로 헷갈렸어요)

1.b. 자본주의 체제하 신화의 기능. 전 신화가 세뇌 도구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우선 큰 전제는, “자본주의는 어떠한 사회 운동이라도 흡수할수 있으며, 실제로 흡수한다” 입니다. 성공 신화는 계급 및 노조 운동에 국한된 자본주의 흡수 기능의 한 면이죠. 그렇기 때문에 신화를 해체할 것이냐 말것이냐는 질문은 자본주의에 흡수될것이냐 말것이냐의 세세한 형태입니다. 그런데 온 세상은 이미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돌아가고 있죠. 이 상황에서 질문은 다시 변형됩니다: 1) 혁명을 일으켜 세상을 뒤엎을 것이냐, 2) 자본주의를 인정하며 투쟁을 그 테투리 안에서 계속할 것이냐? 그리고 성공한 운동은 모조리 다 2)를 선택하였죠 (근래 사빠띠스따[Zapatista] 운동은 이를 초월한 것으로 배웟는데, 자세한 것은 몰라서..) 자본주의를 인정하는 한 성공 신화는 받아들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라는 것입니다. 억, 그러고 보니 논리가 원형으로 자본주의 실재 -> 운동 흡수 -> 자본주의 인정 으로 돌고 있네요.

2. Julian Steward 와 신진화유물론 (neoevolutionary [multilinear] materialism)

이 사람은 인류학자이고, 그리 유명하지 않습니다. 제가 얘를 들고 온 이유는 이번 수요일에 이 사람에 대해서 브리핑을 했던 탓이죠 ^^; 하지만 이 사람이 주장하는 신진화 유물론은 마르크스/엥겔스와는 다릅니다. 이것은 교수님이 보여준 개념도인데 (어떤 책에서 복사해서 가져오셨는데.. 출처를 자세히 보지 못했습니다)

(너무 크게 그렸다.. 픽셀이 아깝다)

마르크스 유물론에서 새로 생긴 것은 “자연 환경”, “문화 핵/변경 문화” 그리고 문화 핵의 피라미드형 인식입니다. 그리고 이 개념도는 Steward 자신이 그린 것이 아니라 후에 연구가들이 그의 사상을 체계화 하면서 만든 것이고요.

흰 바탕 삼각형: 핵심 문화 (core culture) [원래 “문화 핵”이라고 번역했다가.. “핵심”이 알맞는 단어라는 생각을..]
회색 네모: 변경 문화 (secondary culture)

자연 환경: 지리, 기후, 농토, 자연구조 (동식물의 존재 여부)등의 여건
기술 경제: 환경에 적합한 생존 기술 (칼, 창, 트랙터, 토마호크 미사일, 삽 등)
사회 정치 구조: 기술 경제의 필요에 부합하는 가족 구조, 의사 결정 구조, 생존 방식 (예를 들어 동물들이 뜸한 곳에서 칼을 쓴다면 수렵/사냥이 적합하고 이에 걸맞는 추장 의사 결정 구조가 발달 하겠고, 천연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토마호크 미사일을 사용해 외부에서 더 많은 자원을 채굴한다면 그에 맞는 대통령제 및 호의적인 국회 법안 비준등의 발달이 이에 해당하겠죠)

  • 인류학과 정치학에서 가장 이견을 보이는 부분이 이 부분 – 사회정치구조의 해석-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학자들은 끝까지 민주주의가 사회구조라고 주장할것같습니다

이념: 일반 사회 정치 구조가 형성된 후, 이를 설명하는 시대적 담론입니다. 종교, 정치 이론, 예술, 뭐 허다한 “이론”들이 이에 속하겠죠. 신진화유물론도 포함해서..

주의 하실 점은 흰 세모 (핵심 문화) 밖에 있는 기술 경제/사회정치 구조/이념 도 있다는 것이죠. 이들은 자연 환경에 구애 받지 않는 외부의 기술력이나 일시적 사회구조 또는 보편적 정치이념등입니다. 문화 구조에서 상부로 올라갈수록 자연환경에 구애 받지 않는 점이 많아지게 됩니다. 급격한 첨단 기술 도입등이 좋은 예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경우 우선 위의 개념도에서 “자연환경”이 없고, 회색 지역 또한 없으며, 세모는 네모로 그려졌을 것입니다. 기술 경제가 백프로 사회정치를 구속하는 구조이죠.

마르크스의 장점이자 약점중 하나는 논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상정된 보편성이라 합니다. 즉 고대-중세-영주-도시의 유물론적 역사관을 우주적이라 상정하고서는 이에 관련된 노동 및 소유에 대해 사유한다는 것이죠. 마르크스는 이 때문에 식민지를 둘러싼 논쟁에서는 상당히 죽을 쑤었습니다. 유일하게 글을 써본것이 “아시아적 사회들의 생산 방법”이란 것인데 그 글 또한 허접.난해합니다. 이래서 마르크스가 죽고 나서 모르간 [Morgan]의 유물론적 진화론을 보자 엥겔스가 얼씨구나 하고 그의 이론을 차입해버렸습니다. 진화론자들의 강점은 다양한 사회들을 하나의 인식체제 안에서 연구한다는 점입니다. 전세계를 하나의 인식체제로 해석할수만 있다면 유물론적 역사수정주의는 다 된 밥이죠. 모 이것은 19세기 이야기이고.. 제가 Steward를 들고 나온 이유는 그의 모델이 구조간의 느슨한 연결을 허용하기 때문이고, 전 이것이 반헤게모니 세력들의 집합 가능 장소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 Steward가 어정쩡하게 마르크스와 보아스 및 타일러를 다 짬뽕했다는 이유로 그를 좋아하진 않지만)

제가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기술 경제 층위의 회색 지역입니다. 이는 환경에서 분리된 기술 및 경제 구조라는 점에서 특이한데, 예를 들자면 삼세계 수도의 게토에서 보이는 비형식적 경제를 들수 있겠습니다. 모 서울도 있겠지만, 뉴욕, 시우다드 데 메히꼬, 빠리, 부에노스 아이레스 같은 대형 도시를 보면 탈산업화의 여파로 생기는 인종계급적 핵, 게토라고도 불리는, 초규모의 지역이 만들어집니다 (정치적으론 그리 맘에 들지 않지만, 오마이뉴스 홍은택 기자님의 자동차로 흥한 디트로이트, 자동차로 망하다가 괜찮은 문서 예가 됩니다) 이들 지역에서는 정부의 통제도, 시장 논리도, 공권력도 통하지 않는 지역 특유의 비형식 (informal) 경제 구조가 활성화 됩니다. (관계에 따라서 물건을 주고 받고, 물품 교환이 주 형태라는데 잘은 모릅니다)

두가지 실현 가능한 모델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하나는 그랜트 [Sam Grant] 라는 운동가에게서 배운 모델이고 아마 꽤 많은 이야기들이 진행되고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땅과 영혼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to maintain a spiritual relationship with the land] 로 축약되는 농업 공동체입니다. 땅을 생산의 수단으로 보지 말고 환경구조의 일부분으로, 자신의 삶이 그에 종속되는 전체로 바라보며 그 땅을 일구어 사회주의 개혁에 동참한다라는 논리를 가지고 미국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운동은 교외로 도피하는 이상론자들의 70년대 행위와는 처음부터 차이를 두려는 의도를 지니고 시작되었습니다. 재정 상으로는 이윤을 남기지 않는 이 자급자족 농업공동체들은 확장하려 할 때면 후원금을 모아 토지를 구입합니다. 일단 토지를 구입하면 운동에 관심을 표시한 가족들을 찾아서 땅을 나누고.. 모 그렇게 일합니다.

다른 하나는 미국 탈산업화 시대의 청소년들입니다. 미국의 도시들은 60년대의 사회변혁 기간동안 inner city rings 라는 독특한 구조를 만들어냈는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큰 변수는 흑인들의 사회진출에 위험을 느낀 백인 중산층이 교외로 탈출하면서 [the great white flee] 다운타운 – inner city – 교외 [suburb] 라는 격리적인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뉴욕 하를렘을 통과하는 고속도로의 건설 또한 이시대의 결과입니다. 백인들이 나가고 나자, 지역에 머물 필요를 못 느낀 공장들은 외부로 진출하면서 도심의 실업률은 치솟고 디트로이트 처럼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 환경에서 태어난 80-90년생의 청소년들은 그들만의 저항문화를 만들어내는데, 뉴욕 흑인 및 뿌에르또 리깐의 힙합 문화가 대표적이고 또 모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많습니다 –; 피스케 [John Fiske]는 이 중 교외 백인 중산층 청소년들의 탈법적인 행태 (매장에 들어가 옷 훔치기, 가격표 바꿔놓기, 유리창 부수기)를 소개하며 이 또한 저항문화의 일종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반헤게모니 세력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는 거야.. 음 피곤해서 이만 줄임.

PS: “각 영역에서의 부단한 운동” 이란 표현에 의이있슴. 진정한 반 자본주의 운동이라면 개별의 운동을 초월해야만 한다고 생각함.

PS2: 그러니까 반헤게모니 세력들이 자본주의에 저항하려면 “이념” 수준이 아니라 “기술경제” 수준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


게시됨

카테고리

,

작성자

태그: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