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띠노, 히스패닉, 치까노

글 보정

간만에 친구랑 카페에 갔다가 프레스콧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되었어요. 이년 전에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수강하며 읽은 글이었는데.. 얘가 느닷없이 프레스콧 패러다임.. 남미 인종의 열등성이 아니라 스페인 제국이 망하고 있다는 이론이었어. 하구 바로 고쳐주더라고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스페인 제국 이야기도 있었고 아무래도 걔 말이 맞는 것 같다는 T.T 다시 프린트해서 읽을 여력도 없구.. 이에 고칩니다. 청교도/카톨릭 – 앵글로색슨/라틴계통의 인종적 비교는 시대의 담론(지금도 건재한)이었지만 프레스콧 패러다임은 아닙니다.

200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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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부터 였는지 미통계청이 (Census Bureau 가 통계청 맞나 모르겠다) 2000년 인구조사 결과 중 히스패닉으로 표시되어 있던 것을 “히스패닉 또는 라티노” 표시해놓았어요 [참고 문헌 은 Overview of Race and Hispanic Origin]. 정확한 표기는 “히스패틱 또는 라티노, 비 백인”[Hispanic or Latino, non white] 이 되겠네요.

이 표현에 들어 있는 정치 역학으로 글을 풀어보려 합니다. 이중 많은 부분이 미국라티노학 [U.S. Latina/o Studies]의 핵심주장 재탕이란 것도 밝혀둡니다.

미국식 제국주의와 19세기 인종관계

1848년, 멕시코-미국 전쟁이 끝나고 멕시코는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그 대가로 미국은 텍사스를 포함하는 현 미국의 서남부 일대를 요구 했고 이가 멕시코 의회를 통과함으로서 이 지역에 살던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알사스와 로렌스 신세가 됩니다.

멕시코와 미국관계를 인종적으로 분석할때 꼭 필요한것이 프레스콧 [Prescott] 의 패러다임입니다. 그는 20세기 초반 (맞나.. 까먹어서)의 역사학자로 원래 이론은 스페인과 미국의 문화적차이 그리고 이에 기초한 미국/스페인/쿠바 전쟁의 정당화였지만 이는 훗날 멕시코에도 확장 적용됩니다. 프레스콧의 기본 주장은 스페인은 북부유럽의 영향을 받은 미국과는 달리 아랍권과의 교류도 있고, 일을 해도 비옥하지가 않는 토지는 기반으로 두고 있어서 (스페인반도에는 꼬불꼬불한 산맥들이 많죠)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게으르고 미신을 잘 믿는다, 고 주장했슴다.

이것에 덧씌워지는 것이 19세기 멕시코 내부 인종상황입니다. 우주적 인종 [La raza cósmica]론 로 자주 거론되어지는 멕시코의 국가적 혼혈이념은 1920년 멕시코 혁명이 성공하고 나서 제도혁명당 (PRI – Partido Revolucionario Institucional) 주도의 사회개혁 정책중의 하나였으며, 그 전의 (전쟁항복을 서명한 이들도 포함해서) 사회주도 세력은 백인이었으며 “국가” 자체도 백인의 국가로 상상되어졌습다. 이 인종이념적 전환기의 면면은 Lopez의 “인디언 미인대회”를 보시면 잘 보실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멕시코의 1850년대는 아직 백인이 되는 것이 장땡인 사회였고, 특히나 북부 텍사스/뉴멕시코의 수도 DF (Distrito Federal – 연방구간)와 고립된 지역은 이런 경향이 훨씬 강했습니다.

[자신을 백인으로 여기며 실제로 피부가 흰] 이들이 미남부의 Prescott 패러다임을 만나자 강한 충돌이 있게 됩니다. 왜 우릴 저 미개한 인디언/흑인들과 동일시 하는 거냐고, 우리도 백인이라고.. 이것이 19세기 말 미남서부 갈등의 한면이고, 또 하나는 영주적 토지소유를 통해 상당한 부와 사회지위를 누리던 이들이 미국의 산업중시 자본주의에 노출되면서 속속이 재산을 잃고 몰락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 둘을 적어도 인식론적으론 해결하고자 도입한 용어가 “히스패닉/이스빠노” [Hispanic / Hispano] 입니다. 스페인이 위치한 반도가 로마 시절에는 이스빠냐 “Hispania” 였는데 이에 대한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이것봐라 우리도 백인이랑께” 라는 반동적 움직임었죠.

한편 1898년에 미국은 해양 제국주의를 향한 첫 걸음을 내딨습니다. 스페인과 군사 충돌을 유발해 푸에르토 리코 [Puerto Rico]와 꾸바 [Cuba] 섬들을 정복하는 것이었죠. 19세기 중반 남미 국가들의 대거 독립후 스페인제국의 식민 신경제의 핵심으로 등장한 꾸바의 사탕수수 수출 경제도 탐이 났고, 카리브해 섬국가들을 견제할 군사 세력의 전진기지로서의 가치도 있었죠. 이후 꾸바는 미국의 괴뢰정권이 들어섰다가 까스뜨로의 혁명이 성공하고 그가 미국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해 소련 공산당과의 협력을 천명하면서 이야기가 아주 다르게 흘러갔지만, 푸에르토 리코는 ” 장화끈 메기 작전” [Operation Bootstrap]의 통제하에 자본주의식민구조의 훌륭한 모델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뉴딜 정책이 한창인 1930년에는 루즈벨트의 아들이 푸에르토 리코 지사로 정치 연습을 했다죠.

명실상부한 식민지였던 푸에르토 리코의 주민들은 1918년 미국이 1차대전에 참전하자 마자 1919년 시민권을 자동적으로 얻습니다. 이들을 징병하려면 미국시민이어야 한다는 헌법 조항에 의거한 것이었죠. 시민권을 얻으면서 많은 푸에르토 리칸은 뉴욕으로 이주해 자리를 잡습니다. 뉴욕인 이유는 이 시기 1차대전 발발전 흉흉한 유럽 상황을 피해 이주오는 중부 및 서부 유럽인들의 주 목적지가 뉴욕과 부에노스 아이레스 이었기 때문이었죠. [이 당시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백인들의 안전한 주거지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푸에르토 리칸의 대 이주는 독특한 변경 이주 문화를 낳았고 이들은 오늘도 뉴욕과 푸에르토 리코에 적을 두며 비행기를 타고 이 사이를 다닙니다. 푸에르토 리칸들은 뉴욕-푸에르토 리코 왕복 비행기를 항공버스 [guagua aérea] 라고 부르는데, 이 이름만으로도 푸에르토 리칸에게 있어서 뉴욕의 일상성을 엿볼수있습니다.


지도설명: 20세기 초 미제의 확장과 주요 도시 및 지역 표시 지도. 멕시코-미국 전쟁과 그 결과에 대해서 자세히 보고 싶으시다면 미국의 확장 및 국경변경의 역사 History of United States Expansion and Boundary Changes 를 참조하시라

치까노, 보리꾸아, 푸에르토 리칸: 변혁기의 60년대와 민족국가주의

1940년대 국가 전쟁 노조 관계회 [National War Relations Board, NWRB] 와 산업 노조 협의회[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s, CIO]의 주도 아래 미국 산업계 곳곳을 휩쓴 노조화와 50년대 냉전 초기의 매카시즘이 어느정도 가라 앉자 그 동안 이곳 저곳에서 활동하던 유색인종 운동들이 활발해 지면서 Black 과 Chicano 란 정체성을 앞세웠다. 치카노 Chicano 는 원래 미남서부에서 피부톤이 어두운 멕시칸 계통의 이들에게 대한 경멸의 뜻으로 주로 쓰였으나 운동가들은 이 단어을 공통된 억압 경험의 구심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오늘도 치카노는 단순히 인종 정체성이 아니라 정치적 활동성을 전제한다.

치카노 활동성은 강한 국가민족주의의 특성을 띄었는데, 구체적으로 이는 아스뜰란 [Aztlan] 의 이념화로 나타났다. 아스뜰란은 아즈텍 신화에 나오는 미지의 약속받은 땅이다. 그러니까 무슨 재난이 있고 여럿의 전사들이 아스뜰란을 찾아 떠나는 데 북서쪽으로 계속 가서 언덕을 오르니 아스뜰란이 보였다나.. 신화는 그렇고, 치카노 운동권에서의 아스뜰란은 이들의 주 무대 미국남서부 일대가 그들에게 약속된 땅이라는 것이었죠 (음, 언제 어투가 바뀌었지? 다시 복귀) 그리고 이들의 활동은 멕시코 정부의 국가 인종 토박화와 맞아들어 멕시코 정부의 활발한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국가주의 언어를 이용, 대(大)멕시코 “greater mexico/el gran aztlan” 라는 형태를 띠기도 했죠. 오늘날도 이 담론은 Califaztlan (캘리포니아 California + Aztlan) 같은 약간 장난기를 띤 용어 및 메치까 [Mexica] 신민속주의 에서 발견됩니다.

50년대 치까노 노조 활동성의 예로 쎄사르 차베스 [César Chávez] 을 많이 드는데, 그는 확실히 시대의 멕시칸 노조활동 상징이긴 했지만 운동권의 인종성과 민족국가성에서는 많이 약했다고 이야기되어집니다. 그 이유중 일부는 백인주력의 기존 노조 구조도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차베스의 노동인구가 자신을 백인으로 생각하는, 몰락한 스페인계 귀족 세력들도 포함하기 때문에 [어두운 피부의]인종을 강조했다간 파탄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다분히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차베스의 정치적 구심점은 “우리의 목적” [la causa]로 말하여지는 일련의 사회 개혁및 임금 인상 조치였습니다.

한편 웃기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앞서 나온 스페인계 백인들은 자기들이 자꾸만 어두운 피부와 동일시 되자 “이것은 불공평하다”며 나서서, 남미 시민 조합 [League of United Latin American Citizens – LULAC] 을 결성해 “우리도 백인이다”를 요지로 하는 일련의 공공 켐페인을 펼쳤는데, 근래 LULAC의 잡지를 보니까 그 시절 자기들이 한 짓이 시민권리운동의 일부였다는 군요. ^^;;;;

푸에르토 리코에서는 강점 이후 내내 독립 바람이 강하게 불었습니다. 테러도 자주 일어나고 자치의 정도 (독립에서 주편입까지의 이념들)에 따라 세력을 편성하고 서로 설전도 벌였습니다. 이중 분리 독립 세력들은 푸에르토 리코 섬의 원주민인 보리꾸아Boricua 들의 정체성을 따와서 자신들을 그렇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보리꾸아라는 명칭은 그를 말한 사람이 푸에르토 리코 분리독립 또는 자치를 지지한다는 정치 선언이 되고 있습니다.

까스뜨로의 혁명 및 공산화 후 많은 꾸바[Cuba]인들이 미국으로 이민했는데, 특히 백인이며 중산층인 꾸바의 영주,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바띠스따의 군사 추종자들로 주도된 제1차 이민파 (1959-62) 와 기술 전문가들과 뻬띳 부르주아로 구성된 2차 이민파 (1965-73)들은 미국의 대환영 아래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시로 대거 이주하여 40년이 넘는 기간을 통해 그 지역을 경제 및 정치적으로 장악했습니다. 엄청난 자금력 및 반공산주의 정부후원을 바탕으로 기업에 투자를 하며 마이애미를 라틴아메리카와 미국을 엮는 금융 및 문화 허브로 발전시킨것이죠. 특히 남미 및 멕시코 이주민들이 경제적으로 성공을 해도 많은 자금은 그들의 조국으로 돌아가는 반면 꾸바인들은 쿠바에 투자할 생각이 없었죠. 오늘도 이들이 미국 정치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그래서 60년대에는 이렇게 사회경제적으로 뚜렷한 3가지의 인종 그룹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히스패닉 Hispanic 이란 용어가 도입되었습니다.

히스패닉과 인종의 언어화 그리고 2004년 대선

1971년 닉슨 행정부는 히스패닉 유산의 주 [Hispanic Heritage Week] 라는 것을 만듭니다. 정부를 통해 공식적으로 9월 15일-21을 이 주로 공포하는데 그 이유는 “중미의 스페인어를 하는 많은 국가들의 독립일이 이 주에 떨어짐으로 그를 기념하려는” 것이었답니다. 꼬스따 리까, 엘 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그리고 니까라과의 5개 국가가 그 주간 독립이 있었습니다. 멕시코와 칠레 또한 이주간 동안 독립 기념일이 있겄만 이들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주는 현재 히스패닉 유산의 달 [Hispanic Heritage Month]로 바뀌어 9월 15일-10월 15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히스패닉 유산의 달에 관한 자세한 정보 보기)

미 정부의 이러한 조치는 운동권 및 학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현재 펼쳐지는 히스패닉/라티노/치카노 논쟁의 핵심이니 한번 자세히 살펴봅시다.

멕시코의 독립일은 9월 15일인데 왜 이걸 빠뜨렸냐. 당시 운동권에서 가장 입김이 센 치카노들의 영향력을 애써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없앤 것이 아니냐.
9월-10월 내내 많은 국가들의 독립일이 있는데 당시 미국에 이민자들이 거의 없던 5개 국가들의 독립일이 떨어지는 주를 선택한 것은 다른 국가들에서 온 이민자들을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게 하려는 조치가 아니냐.
우리 [치카노, 푸에르토 리칸]은 미국의 시민이다. 그런데 히스패닉은 외국 국가들의 존재를 강조함으로서 우리들의 목소리를 “외국인의 의견”으로 폄하하려는 의도가 있다.

치카노와 푸에르토 리칸은 인종적인 관계로서 매듭지어지는 것이지 스페인어를 한다고 같은 그룹이 된것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은 스페인어를 하지 않는다. 인종적인 면이 미 행정부에 위협이 되니 지워버리고 기껏 같은 언어를 쓰는 그룹으로 무력화 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히스패닉에 스페인과 꾸바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정치적 아젠다는 우리의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우리들을 같이 묶어 둠으로서 “우리 [히스패닉] 은 XX를 원한다”라는 발언을 못하게 원천봉쇄한 것이 아니냐.
이상이 비난의 요지가 되겠슴다. 미 정부는 단순히 행정적인 단순함을 위해 그런다고 대답했지만, 이 논쟁은 운동권 내부의 결속력을 떨어뜨리고 (히스패닉에 동의하는 세력도 생겨나서), 결국 치카노/푸에르토 리칸 운동은 와해 되고 맙니다.

히스패닉이란 용어의 도입이 끼친 파장은 다양합니다. 19세기의 하이픈화 정체성 (하이픈 [hyphen]은 “-” 입니다)을 응용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Hispanic American 이렇게요. 19세기 산업 혁명동안 동유럽과 남유럽 (폴란드, 체코, 이태리, 아일랜드 등등)에서 유입해오던 노동력은 북유럽 미국인들의 혐오감을 샀는데 이들이 자신들의 국가정체성과 미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합하기위해 생겨난 것이 Irish-American, Italian-American, Polish-American 등등 “이태리계이면서도 미국인이다”를 강조하기 위해 생긴것이 하이픈 정체성인데, 그것을 응용할수 있었다는 것이죠.

제가 일전에 메치까-아스떼까 전통 춤 그룹을 연구할때 일원에게 왜 자신을 히스패닉으로 생각하는지 설명을 부탁한 적이 있는데, 그 여자 아이는 “치카노”라는 것은 여성을 억압하는 전통 멕시코 부락 사회로 연상이 되고 히스패닉은 여성의 권리가 존중되는 미국사회로 연상이 되어서 히스패닉을 선호한다고 답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치카노 초기 세력 지도자들의 실수도 한 몫 하였는데, 미국 백인 사회와 경계를 놓으려니 멕시코까지 거슬러 올라갈수 밖에 없었고, 가부장적 사회에서 본을 따 대외적으로 “강력함”을 노출하려는 일환으로 여성을 억압한 것이죠.

최근에 와서 쓰이는 라티노라는 용어 만 정리하고 나머지는 담으로 기약하겠슴다. 유럽 언어중 게르만-앵글로 색슨 계통과 라틴 계통이 있는데 이 계통 (불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유럽국가들이 식민화한 미대륙 국가들을 “라틴 아메리카” 라고 부릅니다. 남미, 스페인어권 북미/중미 그리고 카리브를 포함하지요. 여기 사는 이들을 “라티노”라고 부르는데, 이는 시민 단체들의 자발적인 사용과 인종을 다시 담론에 가지고 왔다는 점으로 호의적으로 평가되고 있는데요 한편은 히스패닉과 얼마나 다르냐는 반론 (히스패닉=스페인어, 라티노=스페인/포르투갈/프랑스 어)과 치카노들의 자기들은 [백인일수도 있는] 라티노가 아니라는 반발에 내부 논쟁이 치열합니다. 제 의견은 그래도 인종 개념을 다시 가져온게 작은 성과냐는 생각에 라티노를 옹호하지만..

라티노/히스패닉 인구가 2003년을 고비로 African-American 인구를 능가하게 되면서 미국 정치권에서 “과연 이들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가”가 화두입니다. 이 관심을 이용해 구운동권에선 세미나도 열고 해서 정치인들을 말아먹지만.. 원래 “라티노”라는 그룹이 운동을 목적으로 만든 것인데 거기에 무슨 공통 이익관계가 있겠느냐, 다 뻥이지 하는 게 제 관점입니다. 정치인들에게 돈을 뜯어낸다는 점에서 그래도 수고는 해야겠지만요. 2004년 대선에선 부시나 케리나 라티노/히스패닉 투표를 얻어보려고 쩔쩔 매는 꼴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더듬거리며 스페인어로 연설을 하는 장면이란.. ㅎㅎ www.georgewbush.com 은 외국접속에 차단되었다고 하네요. 존 케리 웹에 가셔서 스페인어로 된 TV 광고 한번 보세요. 그러니까.. 케리가 얼빵하게 “이 광..구오는…. 구왕고는 제 공식 메시집니다” 라고 하고 나면 별 내용 없는 광고를 스페인어로 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쭉 나가는 광고. ㅋㅋ

가을 방학도 끝났고, 담에 또 글을 쓰게 되면은 미국 라티노와 라틴 아메리칸 사이의 스페인어 사용을 둘러싼 분석을 올려보도록 하죠.

참고 글
(학술지 글은 대부분 온라인에서 얻을수 있으니 요청하시면 이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yokima@gmail.com. 책은 곤란하죠 )

수산 오볼레르. 민족 딱지와 라티노인: 미국내 정체성과 대표성의 정치. 1995 [본 글은 거의 이 책의 재해석임]
Oboler, Suzanne. Ethnic Labels, Latino Lives: Identity and the Politics of (Re)Presentation in the United States (Minneapolis, MN: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5)
릭 로뻬스. “1921년 인디언 미인대회와 멕시코 국가문화의 민족화”, 미국 히스패닉 역사적 재검. 2002 [있음]
López, Rick A. “The India Bonita Contest of 1921 and the Ethnicization of Mexican National Culture”, Hispanic American Historical Review, no. 82, vol. 2 (2002): 291-328
일란 스타반스. “라티노학과 흑인학: 매듭 및 갈림길”, 대학교육 소식지. 2003 [있음]
Stavans, Ilan. “Latino Studies and Black Studies: Bonds and Divergent Paths,” 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 vol. 49, no.48 (2003): B7-B9
리차르드 로드리게스. “Godfather의 싯구: Chicano 힙합 문화의 가족과 국가주의를 의미함”, 벨뱃색 동네들: 대중문화와 Chicana/o 성정체성. 2003 [있음]
Rodríguez, Richard R. “The Verse of the Godfather: Signifying Family and Nationalism in Chicano Rap and Hip-Hop Culture,” Velvet Barrios: popular culture & Chicana/o sexualities, ed. by Alicia Gaspar de Alba (Basingstoke: Palgrave Macmillan, 2003)
리차르드 케이건. “Prescott 패러다임: 미국역사학의 성과와 스페인의 기움”, 미국 역사 재검 1996 [있음]
Kagan, Richard. “Prescott’s Paradigm: American Historical Scholarship and the Decline of Spain,” American Historical Review (1996): 423-46
루스 글래서. 음악은 나의 깃발: 부에르토 리칸 음악가들과 그들의 뉴욕 공동체. 1997
Glasser, Ruth. My Music Is My Flag: Puerto Rican Musicians and Their New York Communities, 1917-1940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7
루이스 레알. “아스뜰란을 찾아서”, 아스뜰란: 치카노 고향에 대한 수필. 1989
Leal, Luis. “In Search of Aztlán”, Trans. by Gladys Leal, in Aztlán: Essays on the Chicano Homeland, ed. By Rudolfo A. Amaya and Francisco Lomeli, (Albuquerque, NM: University of New Mexico Press, 1989): 6-13
헤마 게바라. “어제의 꾸바/오늘의 꾸바: 음악과 디아스포라의 정치”, 음악 이민: 라티노/라틴 아메리카의 국가초월주의와 문화 섞임주의. 2002 [있음]
Guevara, Gema. “La Cuba de Ayer/La Cuba de Hoy: The Politics of Music and Diaspora,” Musical Migrations: Transnationalism and Cultural Hybridity in Latin/o America, ed. by Frances R. Aparicio and Candida Jaquez (Palgrave MacMillan, 2002): 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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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띠노, 히스패닉, 치까노” 에 하나의 답글

  1. 라티노멕시칸 // castellanoespañol

    – “멕시칸”이 우위를 점하는 미 남서부, 쿠바인의 마이애미 근방, 포에르토 리칸의 뉴욕 근방을 제외한 중서부에서는 뚜렷한 지역적 라티노 숫적 우위가 없다. 그래서 정치적인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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