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셨습니다 가 영어로 뭔가에 대한 질문을 받은…

단톸방에서 “수고하셨습니다” 가 영어로 뭔가에 대한 질문을 받은 후 내가 답변한 내용만 추려서 정리 해 봄

수고하셨습니다 같은 표현은 대부분의 다른 언어에 존재하지 않아서 기껏해야 문화적으로 비슷한 기능을 하는 다른 표현을 넣는것 정도가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표현의 역할/기능이 “수고하셧습니다” 와 백프로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적당히 용례가 겹칠 뿐이지. 그런 류의 표현에 대해 “그 표현은 ㅇㅇ 언어로 뭐라고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번역자는 난감합니다.

  1. “그런 표현은 없다” 라고 했다가 다른 사람이 초월번역해서 “근데 다른 번역자는 ㅇㅇ라고 했는데요? 그게.맞는거 같은데 님은 모르셨나요?” 같은 의혹을 받으면 설명하기도 구차하고 음.. 기술에.대해서 잘 모르는 사장에게 기술 제품을 팔아야 하는 기술자의 입장이라고 해야하나
  2. “그 표현은 ㅇㅇ이다” 라고 하기엔 언어전문가로서 양심이 괴롭고

이렇듯 세상은 무한히 복잡하고
인간은 유한히 단순합니다

사실 저는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표현에 거부감이 많이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가 한국 사회에 침투하면서 생겨난 표현인 것 같거든요. 상대는 열심히 일했는데 나는 그거에 상응하지 못하는 임금을 주고 있고.. 미안하니까 말로라도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해서 “원래 받아야 하는 액수”와 “너 같은 저학력 실업자가 넘쳐나니까 내가 너에게 줘도 사람을 찾는데 문제가 없는 액수” 사이의 차이를 그걸로 땡처리 하려는 느낌이 들구요

그리고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표현이 제가 1990년대 한국을 떠나올 때 없었고 1994년에도 없었던 것 같은데, 1999년에 한국 방문 했을 때 할머니가 갑자기 사람들에게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더라구요. (그 전에는 없던 표현 같은데) 그후 미주 한인들 사이에서 최근에 이민온 사람들 중심으로 교회사람들이 여럿 모여서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별로 재미없는 뭐 청년회 모임이라던지 그런거를 하고 있다가 이제야 할일 을 다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 단체로 허공을 응시하며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치는데.. 엄청난 문화적 간극을 느꼈습니다. 1994년과 1999년 사이에 있었던, 언어까지 변화시킨 세컨드 임팩트 그것은 IMF 가 아니었을까요

라고 의심해보지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정밀한 필드조사와 이론화가 필요하겠죠

일단 “수고하셨습니다”가 여러가지 다양한 맥락에서 쓰인다는 점에서 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네요

  1. 내가 누구에게 뭘 요청하고 그 사람이 하면 “수고하셨습니다”
  2. 그냥 오후 5시에 팀장이 퇴근하면 그 부서 전체가 이구동성으로 “수고하셨습니다” 외치고 그제야 퇴근 준비

미국에는 2에 해당하는 표현이 없습니다. 그런 문화가 없으니까..
1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이 thank you for the trouble 입니다

1, 2, 말고도 여러가지 더 세밀한 맥락에서 쓰이는데 그건 전문가에게 맡기고
어쩄든 그래서 저는 허위의식이 들어있는 것 같은 것으로 의심되는 수고하셨습니다 를 지향하고 “감사합니다” 를 쓰려고 합니다. “어이구 우편배달부 오셨네요.. 이렇게 매일 배달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한가지 확실한거는 80년대에는 수고 이 표현이 90년대 말보다 훨씬 덜 쓰였다는 겁니다
그거는 쉽게 증명가능할 겁니다

제 기억에 칠레에서 한인 1.5세, 2세 친구들끼리 대화하다가 “야 난 이만 간다, 수고해” 라는 표현을 써야 할 때는 이렇게 처리했어요 “Ok ya me voy, tu haz sugo[수고]”
아무도 이론화 하지 않았지만 십대 친구들도 살면서 “수고하세요” 라는 표현은 한국어 문화권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올바른 관계 설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노동의 가치를 정직하게 인정하지 않는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표현은 영원히 누구에게나 조금씩 불편한 표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와 “수고하세요” 둘 다 싫습니다.

  1.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한것이라면 제가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힘들지 않았습니다. “큰일 하셨네요 잘 되서 축하드려요” 라면 몰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했는데 왜 그 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야 너 힘들었지?” 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나요.
  2. 제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한 것이라면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 이런거 해야 하는것도 힘든데 그걸 또 말로 재확인 받기는 싫습니다. 마치 그렇게 사는게 정상인 것 처럼, 정상화 하는 것으로 들리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모두가 가급적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사회 차원에서 그걸 잘 조화시켜서 경제가 굴러가게 하는 겁니다. 현재 경제 체계에서 그런 시스템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급여 체제와 교육의 가치 등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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