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길래 피 억압자에게 목소리를 주면 안된다니깐

좆선일보: 쑥대밭된 광주 부정 수능 취재기 를 보고..

지종익 기자 양반, 참으로 꼴이 좋소이다. 광주에 가서 좆선일보 명함을 다고 고압적으로 취재를 해보려다가 곳곳에서 까버림을 당하니 참으로 기분이 좆선같지요?

신근대주의자들이 경고를 해온지 이미 십오년이 지났건만 종익이는 주류적 담론의 기본 원칙을 망각해버렸소. 무릇 사람을 억압하려면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면 안된다 말이오!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그대로 인용, 그것도 기자를 까는 목소리를 그대로 실어서 “잘 못한 학생이 감히 좆선 기자를 까니 황당하다”라고 우는 소리를 내니 망해도 참 폭삭 망했소.

“누구야? 기자야? 짜증나. 말 하지 마. 저 개새끼들한테 말해서 뭐하게? 쟤들 말해줘 봤자 왜곡해서 쓰니까 이야기하지 마.” [기사 中]

얼마나 열받았으면 이제는 아예 ㄱ 학생 또는 ㅇ 학생도 아니고 그냥 기사 중간에 찔러 넣었을까. 이해가 간다 해. “가담한 학생의 친구”로 배경은 참 잘 끼워 맞추려고 노랙해주셨소. 저 막말을 기자 앞에서 큰소리로 해준 학생의 대 매체 의식에 경의를. 종익이는 지금이라도 존 휘스케의 [대중문화] 2장: 상품 및 문화를 찾아보시오.

“청소년은 종합 쇼핑몰에서 최상의 게릴라이다. … 돈은 없으나 시간은 남아도는 상황에서 그들은 상품만 빼놓고 공간과 시각결과물을 소비한다. 그들은 쇼핑몰이라는 공간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들어… 예를 들어 진열대 주위로 몰려들어 고객이 상품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거나 음료수 캔에 맥주를 넣어 마시면서 주인의 신경을 건드려 보안요원을 부르게 만든다.” (휘스케, 1989: 38)

기자로서 무시당하는 것에 열받아서 한 건 저질러 보려면 학생들의 반주류적인 말은 능력껏 왜곡해서 당신이 좋게 보이게 해야 제대로 여론 조작이 되지, 이렇게 치부를 드러내서야 냉소밖에 더 얻겠소? 흐흐. 당신은 지금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거요. 뭐냐 하니, 당신의 글 속에 이들이 말할 공간을 좆만하게 만들어 놓았는데, 인용을 정제되지 않은 형태로 해서 이들이 하는 말의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의가 당신의 쪽팔림 및 노여움을 능가해 버린 것이요. 왠만하면 공간을 주지 않는 것이 상책이요.

왜 종익이 머리 속에서 얘내들을 인용해야 하는 압박감을 느꼈는지 안 봐도 삼천리구만.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기자에요? 궁금하면 직접 가서 물어보든가!” [기사 中]

그러게 말이요. 정작 당사자는 접근도 못하고 뻘뻘거렸소? 아무래도 가족의 눈총이 따가우니 뒷담 넘어 친구를 추궁했구만.

이 글 올려준 스타라이트 님께도 참으로 감사한 말씀을 전해야 겠구만. 님의 공로가 아니면 어찌 내가 그 많은 매체의 겹겹이 해석성 기사를 뚫고 나온 이 고딩들의 직접인용을 들었겠소. 오마이도 그렇게 직선적으로 인용하지는 않았으리요

후후, 개운해라. 광주 고등학생들 힘내시오.

그리고 종익이, 조까시오.

사진 출처: http://maddox.xmission.com (본 글과 상관 없음)
Image source: http://maddox.xmission.com (image is unrelated to the article)

2004년 12월 4일

김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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