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공공의 간극은 사회 불합리만큼이 아닐까요

(여기서 인용한 모든 분의 글로 트랙백을 걸었습니다. 거슬리시는 분은 립흘이나 이멜을 보내주시면 지워드리겠습니다.)

개인적인것은 바로 사회적인 것으로 편입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deulpul님의 원제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미국 패러디 계간지인 The Onion 에서 장난 기사를 제작한 것이 이번 사건의 시발점입니다. (그 수많은 트랙백을 따라가 보면 아시겠지만 많은 이글루 쪽 분들이 deulpul님이 “픽션”이라 기술한 점을 놓치시곤 이 기사를 실사라 생각하고 계십니다).

반응이 공포 그 자체입니다. 이 반응들을 공통으로 흐르는 점은 온라인 상의 자아와 그것이 지인들 (특히 가족들 및 교회)에게 예전에 자신이 구축했던 이미지와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 충격을 감당 못해 공포심을 느낀다는 것이지요. 그 차이의 내용을 보자면 크게 [부정적으로 정의되는] 생활 – 음주, 그냥 노는 것등 (enomis, 르웬) 과 흡연 마리화나등의 사회적으로 선택적 마이너에 속하는 행동 (탄산고양이) 성정체성 및 취향 (미친모자장수, 유유柔肉, mooni, 케로빙 ), 구성원의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 잡사 (Ta.Ae., 키라)등을 자잘하게 찾을 수 있지만 대략 다 개인과 사회이미지의 간극으로 설명되지요.

이미, 많은 분들이 트랙백을 거셨다가 답글 자체를 지웠습니다 (좀.. 히스테리아의 정도가 심하십니다… -_-)

일단 예시를 하나 드려야 겠습니다

저희가 같이 일하는 학교 담당자중 한 분은 레즈비언으로서 윤리적으로 보수적인 미 남부 흑인 가정에서 태어나 쭉 살다가 성 정체성이라는 것을 다루면서 가장 심각하게 갈등한 것이 자신의 어머님이라고 그러셨습니다. 당연하지요. 하지만 이 문제는 숨길수 있든 숨기지 않던 그에 상관없이 가족과 공유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투쟁은, 그리고 가장 힘든 투쟁은 가까운 친구 및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다라는 아주 꼬집는 말씀을.. 유유柔肉 님을 인용하자면 언제든 당당하게 “이 곳이 바로 제가 살아가는 방식의 일부입니다.” 라고 말할수 있어야 한다구요.

사회 불합리 및 억압이 제일 먼저드러나는 곳은 일상 생활의 매 순간 순간입니다. 대안 성정체성에 대한 억압, 자본주의 효능에 반대하는 모든 생활방식의 범죄화, 비주류 취미의 타자화 등등의 주도적 이념 또는 orthodoxia가 구체화 되는 과정이지요. 이러한 구조를 회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지만, 언젠가는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할 담론이고 그 절차는 조금씩 밟아가는 것이 더 쉽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제일 먼저 어빙 고프만백스테이지 이론을 근거로 내세워 모든 사회상의 주체는 개인의 공간을 가져야 한다는 반론이 있슬 것입니다 (figue 등). 일터나 그 밖의 사회 공간에서 모든 개인사가 개방된다면 사람은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나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사회상 합리적인 방식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필요악이라구요.

그런가 하면 전문적인 은 이고 인 것이니 괜찮지만 은 지인, 특히 엄마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엄마 자신에게조차 유리하다. (다구찬타, キラ, lapislazli , Hermes) 타인을 생각한 윤리적인 행동이라는 것이죠.

우선 백스테이지 이론은 온라인의 경우에 부합하지 않는 다고 생각합니다. 백스테이지는 분명 일자리 상 고객과 노동자 사이의 소외를 전제로 하는 상황에서 이를 해소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왠만하면 가족 및 지인과의 관계는 노동자/고객의 관계 수준이 아니겠죠? 또한 일자리에서 극단의 형식적인 관계를 같는 이들과는 아마 상대방 조차도 이쪽을 기억하지 않을것이기 때문에 (웨이트레스 또는 슈퍼 종업원같은 일의 경우) 이름조차 묻지 않는, 아니 관심을 아예 갇지 않는 경우이죠. 고로 진정한 백스테이지는 소외를 전제하는 데 소외 유의 경우 인간 관계가 없고 소외 무의 경우 백스테이지 이론은 알맞는 담론구조가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윤리적인 행동이다”라고 하는 것은 논쟁의 소지가 있겠지만 저는 이러한, 타인을 위한 듯 하면서 자신의 행동권을 유보하는 행위는 결국 타인의 주체성을 자신의 주체로 교체하는 작업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표명하겠습니다. 엄마가 내 글을 가지고 잔소리를 하던 불필요한 걱정을 하던 저는 우선 정보를 내드리면 된다는 것이죠.

사실 엄마가 별 쓸데없는 사실에 과민반응을 보이시는 것은 아마 정보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 첫 이년동안 이메일을 꼬박 꼬박, 매 학기 끝날 때마다 다섯 페이지 정도 분량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보내드렸더니 그걸로 만족하시고 꼬치 꼬치 캐묻는 일은 오히려 집에 머물던 고등학교 때 보다 더 적어졌습니다. 진로와 돈문제 같은 굵직한 일들은 늦은 밤에 잠옷 바람으로 회담을 두번 가지고 서로의 차이를 간직하긴 했지만요. 가족같은 밀접한 관계일수록 서로를 알아가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반대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낮습니다.

윤리적으로 올바른 것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지 타인을 생각 하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글을 쓰며 세운 한 가지 예외는 제 입장이 맞던 안 맞던 동의하지 않는 제3자가 있기에 타인의 개인정보는 노출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 결론을 남에게 까지 강요할 수는 없거든요.

고로 관계에서 개인의 공간이란 것은 사회현상을 부적합하게 적용한 것이며 이를 점진적으로 허물어서 사회 공간과 매듭을 짓는 것이 보편적 해방의 길이라는 글이였습니다.

UBEX 님의 립흘을 인용하며 물러가지요

UBEX: 부모님이 블로그를 쓰시게 되는 날이 어쩐지 기대가 됩니다. -_-
오..어머니.. 지금까지 김치에 그걸 넣어왔단 말입니까 라는 리플을 달 수 있지 않을까…

유유柔肉: 부모자식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블로그, 훈훈한 장면이겠군요. 답글로 ‘모르고 있었느냐 아들아’ 라는 둥의 즐거운 장면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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