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 광복 통일 축제. 주사파. 정체성의 정치.

나성 통일 맞이 (LA OneKorea Forum) 과 민들레에서 광복 60주년 통일 축제를 주최했다. 오늘은 서울공원에서 한인타운을 쭉 도는 행진이 있었고 내일은 김동원의 “송환” 영화 상영이 있다. (이 기술은 원래 행사 당일인 8월13일 (토)에 쓰기 시작하며 인용문을 미리 끼워놓았다가 이제 와서 마무리한것이다)

인프라

Wilshire 이남으로 내려가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서울 “국제” 공원이 보이질 않아서 한참 헤맸는데, 지나가던 라티나 아주머니에게 물어 보니 저기 구석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 팔고 있는데 운동장도 있고 하니 아마 거기일 것이라고 얘기해주셨다. 정답.

맙소사. “서울 국제 공원”이라는게 대로도 아니고 블럭의 안쪽으로 들어간 구석에 쳐박혀 있는 맨 흙으로 된, 배구 경기장을 두개 정도 합쳐 놓은 규모의 운동장이었다. 이런거 개명하면서 분명 오프닝 행사는 크게 했을게다, 정치인들 참석한 상태에서.

주 행사를 운동장에서 하지 않아서 자세히 둘러보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아파트와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서 언뜻 동네 뒷마당 놀이터 같기도 했고, 길가로 가면서 풀밭이 있지만 철조망 때문에 접근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다.

행사 기술


(원래 포스터 용으로 만들어서 이멜로 받은 건데, 저기 나오는 어린이 주변에 블러 효과가 너무 심해서 현장감이 떨어진다)

TBL씨는 행사가 시위 분위기를 띄자 아주 좋아하는 눈치였다. (노래 부르고 소리 지르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하는데 기분상인지 직업 병인지 확실치는 않다) 행사측에서는 파란 한반도기에 맞추어서 파란 티셔츠, 할머니들 쓰는 모자, 그리고 파란 풍선으로 세트를 갖추어 주고는 $10을 받고 있었다. (이걸 두고 그 아주머니는 “팔고 있다”라고 했을텐데, 어떻게 그런 눈치를 다 쳈을까?) 난 돈 한푼 없는 백수 신세이기 때문에.. 그리고 버스 승객 조합 입장에서는 인원 동원을 하게 된 셈이기 때문에 (이날은 WC, N, E등 우리측에서는 다섯명이 넘는 인원이 출동을 하였기 때문에 내가 나온 상대적 가치는 떨어진다고 본다) 조합에서 참가비를 내주었다.

풍선은 깃발로 인해 딱딱해지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데 아주 좋다. 이게 금 행사측의 새로운 아이디어인줄 알고 감동했는데 나중에 보니 확실치 않더라. 하여튼 티셔츠를 맞춰입고 할머니들 쓰는 모자를 눌러쓰고 같은 색깔의 깃발과 풍선을 든 20명 정도의 무리가 풀밭에 나와 있는 모습을 보자니 단체로 소풍나온 것 같기도 하더라. 소집은 4시로 해놓고 나는 15분정도 늦은 것 같다. 30분이 되자 담당자가 나와서 이제 코리아타운을 돌고는 돌아올 것이라고 설명을 해주셨다.

민들레와 UCLA 기반의 모 학생단체 (이름을 잊었음)에서 학생들 약 8명이 쟁과 꾕과리 그리고 장고를 메고는 선두에 나섰다. 구호는 없었고 오직 국악단이 리듬을 연주하며 sidewalk를 이열종대로 약 15블럭 정도 걸은 것 같다. 한 손에 깃발을, 다른 손에 풍선을 들기에는 길 폭이 좁은 감이 있기에 많은 참가자들은 풍선을 깃대에 묶었고 나는 모자 뒷부분에 묶었다. 풍선 끈이 좀 긴 데 (1미터 정도?) 그 길이를 다 늘어뜨려서 가끔씩 줄이 엉기는 문제가 있었다. 풍선과 장고 소리에 힘입어, 약 사십오분 걸린 땡볕에 강행군은 (적어도 나에게는) 상당히 즐거운 산책이 되었다. 원래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모처에 도달해서 (그게 한인 회관이였던가? 영사관은 아닌 것 같고.. 자세히 안 봐서) 선봉이 달팽이 모양으로 돌아가려고 (강강술래 할 때 처럼) 유도 했던것 같은데 실패한 것 같다. 대열을 풀고는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 약간의 이야기가 있었고, 구호를 즉석에서 협의하에 만들었는데, 한족어로는 뭐였던지 기억이 안나고 대응하는 영어 구호는 korea is one 이였다. 구호 외치는 것에 더 익숙해 보이는 30대 아저씨가 회군 중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셨다. 호응이 없었다. 나름대로 협조했지만 (슬슬 심심해지기 시작하였음으로) 십분 정도 부르고 나서 그만두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에 몇몇분들이 포장 김밥을 꺼내서 드시기 시작했다. 완전히 소풍 다 됬다. 딥따 큰 기를 들고 앞장서서 진군하던 YSY씨와 모군이 대열 사이를 여러번 뛰어들면서 흥을 돋구었다.

돌아와서는 놀자며 다시 흙 운동장을 달팽이 형상으로 돌았으며 근처에 계시던 노숙자 할머님이 덩실 덩실 춤을 추시며 합류하기도 하셨다. 비트가 꼭 QuetzalCoalitcue 에서 배웠던 비트 같아서 발걸음을 다시 따라해 보았다. 기본적인 패턴은 재현할 수 있어도 순서랑 무늬 그리는 것은 도저히 못하겠다. 신나고 재밌었다. 끝나고 나서 관계자가 “참석 단체들의 인사가 있은 후 뒷풀이가 있겠습니다.” 헐, 까놓고 뒷풀이래..

참석 단체가 인원에 비해 의외로 많았다. CNA, 무슨 반전 단체, 또 무슨 반전 단체, 그런 단체들에서 백인 인사들이 나와서 반전이랑 반제에 대해 이야기를 좀 (길게) 했고 민들레등에서는 짤막하게 인사했느데 분명 언어가 (한족어가) 걸림돌이 됬을 것 같다. 영어는 안 하는 분위기더라구, 근데 할 말이 많아보이는 학생들은 젋고. 우리 대표는 si se puede (할 수 있다) one korea 이런 구호를 소개하던 것 같은데 적어두지 않아서 기억이.. 그 구호를 몇번 외치니 뒷켠 놀이터에서 놀던 (행사랑 상관 없는) 라티노 분들 밑 어린이들이 여기를 주목하는 것 같아서 괜찮은 효과를 본 initiative라는 생각을 했다. 이 중 내가 주목한 것은 나이드신 장로님. 세번째로 나오셨는데

주사파

자신이 할 말은 없고 유명한 (왜 “유명한”이라고 소개했을까? 다른 표현이 많은데) 분들 세사람의 명언을 소개하겠다고 하시며, Fidel Castro의 이야기 하나. 좀 길고 별 알맹이가 없어보이던 이야기인데 난데없이 “인생을 오래 살았으며 충분히 노력했다”라는 것은 기억나고. 그 후 김일성의 “예수도 조선 예수여야 한다” 라는 이야기. 그리곤, 신해철? 이름이 어떻게 되더라? – 공자도 조선에 들어오면 공자가 조선 공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이 공자 조선이 되고, 석가가 들어오면 석가 조선이 되니 이는 노예 근성이라”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

그러니까 결국 주체 사상 이야기고, Fidel Castro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모르겠지만 (성공한 주체 혁명의 예 라는 이야기인가?)

정체성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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