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 자유 인문과 개인/사회

(아무래도 공개된 제목은 한글로 시작하는 것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겠지?)

아무로 날 모르는 공간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좀 쏟아내면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해소 되지 않을가 싶다.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대학 내에서의 개인/사회 얘기인데 그에 대한 배경이 필요해서 자유 인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다. 영양가 없는 개인 얘기이니 -일종의 공개된 자학 自虐 – 알아서 하셈

Liberal Arts [Humanities] (자유 인문)

내가 이제 막 졸업하려고 하는 이 대학교는 사립 자유인문 (private liberal arts) 학교이다. 자유 인문이 뭔지는 2학년이 되서야 대충 감을 잡았다. 대략 모든 학문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배움의 전문화를 사양하고 학생들이 어떠한 분야라고 접할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는 공간이다. 철학과 화학 이중전공을 하든지, 미술과 경제학을 하던지, 물리와 젠더학을 하던지 학교에서 일체의 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권장하는 편이다.

이러한 전통은 그리스/로마의 고전인문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우주적 인간이라나.. 그리고 초기에는 사립대 (동부의 프린스턴 예일등등)에 집중되었고 근간에는 주립대학에도 College of Liberal Arts 라는 형태로 퍼지는 것 같다.

이곳 마캘리스터는 상위급에 속하는 자유인문교중 비교적 새롭게 등단했다. 1991년에 3억달러에 상당하는 금액의 기부금이 들어오면서 (당시 학교 총 자산이 4억 달라였다. 그 충격을 상상해 보시라) 엄청난 투자를 통해 지역권 상위 학교에서 국내 상위권으로 껑충 뛰어오른 케이스다. 그로 인해 인지도와 입학 경쟁률이 낮다. M은 웨버가 말하던 “새 자금” [new money] 에 바로 우리가 해당한단다.

다른 학교와 비교해 뭐가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수업실의 평균 크기가 17명이라는 것은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참 잘 난) 교수가 학생들을 일일히 신경 써주고 그들의 연구물들이 최고급이 될수 있도록 지도 해줄 수 있는 환경이 된다. 교수들은 이곳에 하루에 거의 12시간씩 근무하며 학생에게 최고를 요구한다.

나 같이, 고등학교의 기대도가 낮은데애 불만족을 느끼던 부르조아 학생에게는 최고의 환경이다. 아드레날린 농도가 엄청 높다. 하고자 하는 얘기는 여기서부터.

페이퍼 하나 쓰기

연구물이 최고라는 것은 페이퍼를 한번 써보고, 한번 훑어보고, 교수에게 개념을 이야기 해서 논조가 약한 부분을 뜯어고치고 하여간 개별적인 작품으로서는 어딜 가서도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을 이야기한다. 실제적으로 결과물이 최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기본 기대가 존재하니 이걸 만족하려고 글을 쓸때마다 꾸뻑 죽는다. 몇달간 죽어가며 (과에 따라서) 실험실/도서관/현장 연구하고, 그걸 또 며칠 걸려서 써대고, 그리고 드래프트에 대해서 교수가 뭐라뭐라 이야기 해주면 그걸 또 추가 연구하고 밤새며 다시 쓰고 대게 한계에 도달했다… 더 못하겠다.. 징그럽다.. 할 때 쯤 자포자기 한 상태로 페이퍼를 낸다. 보통 제시된 한계 날짜보다 하루 정도 늦는다. 나름대로 독창성이 있는 연구물이라고 생각한다. 일주일만 더 투자하면 깔끔하게 마무리될수 있는 페이퍼.. 하지만 그 다음 과제물을 끝내려면 그 페이퍼는 물 건너간 상태.

첫 삼년은 좋아라 하며 일을 했었다. 혼신을 바쳐 글을 쓴다는 것이 매력적이고, 수업메이트도 다 기준이 이 정도이고, 교수가 자기 개인 생활 희생해가면서 까지 읽어주고 지도해주는 학교에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그런데, 이제 그럴 힘이 안된다. 학교 나와서 그냥 일이나 하고 싶다. 학문의 세계는 끝이 없다. 반론에 반론에 재반론.. 끝이 보이면 그 때 나와서 그 개념을 같고 일을 하면 되는데, 결론은 끝없는 논쟁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구조적 한계가 보이니 성적이 급강하한다는 것이다. 졸업도 못하고 쫓겨날 만큼..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이 그러지, 사유는 환경에 좌우된다고. 사실 관계가 바뀌어서 내가 수업 진도를 못 따라가니까 나름대로 변명을 대는 것이 아닐까.

인류학 이론 수업에서 두번째 에세이를 써야 한다. 페이퍼도 아니고 겨우 6페이지 짜리 에세이다. 며칠을 고민해서 겨우 생각한게 개인의지라는 개념이 뒤르크하임이 suerorganic을 고안한 그 때부터 이리 저리 끌려다닌 개념이었으며 (정확히는 초기 진화론주의자.. 스펜서 및 모르건의 그것과 Boasians의 역사적 정의론사이의 쟁점) 그것이 말리노스키에 이르러서 협의를 보는 듯 하다가 다시 신진화론주의가이 큰 호응을 일으키니 포스트모던주의에서 본질적 부정을 통해서라도 개인의지를 보호하려 했다는 논지였다. 근데 제출 날짜가 지난 화요일 오후였고 이 주제를 겨우 생각한 것이 월요일 밤. 제일 큰 문제는 아직 내가 읽은 사상가들 중 19세기 후반기 Boasians/초기 진화론자와 1940년대의 신진화론 및 1970년의 포스트모던 사이에 있는 사상가들을 하나도 안 읽었다는 것이다. (1920년대의 구조주의, 기능주의 및 구조기능.. 말리놉스키, 에번스 프릿처드 그리고 랫클리프 브라운.. 그리고 레비스트로) 그러니까 이론의 역사를 세세히 엮어야 하는데 중간 지점이 완전히 공터상태.

얘네들 못 여태 읽은 것 채우며 밤 세우고, 일하는 곳에도 이멜 띄우고 못 오겠다고 하고, 화요일 오후에 급히 급히 글을 쓰다가 결국 제출 시간 (화요일 5시)에 못 냄. 보통 과제물이 있을 경우 늦게 내면 얼마씩 점수가 깎이는 게 있는데 내가 받은 과제물에는 “화요일 5시까지 낼 것. 늦은 페이퍼는 안 받을 것임” 이라고 적혀 있다. 난 어떻게 되는 거야, 다 망친 건가? 그러니까, 여기서 F를 받으면, 현재 C- 상태인 이론 수업에서는 학점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고, 학점을 못 받으면 금년에 졸업은 불가능하게 된다. 금년에 졸업을 못하면 졸업 연기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재정 보조금이 더 안 나오고 학기당 일만오천불에 해당하는 등록금 전액을 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그럴 사정이 아니므로 자퇴로 이어지겠구나. 화요일 저녁 내내 스스로를 가책하며 어떻게라도 페이퍼를 마무리 해보려고 했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라고 생각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자살할 여건은 안 되는 것 같았다. 아직 공부 말고도 해보고 싶은 일이 널렸으니. 근데 자살에서 대학 중퇴로 생각이 이어지자 페이퍼 쓸 생각은 나질 않고 그 후 어떻게 할까라는 잡념만이..

죽고 싶은 화요일이 지나고 수요일 아침, 수업에 들어갔다. 교수는 내가 페이퍼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직 눈치 채지 못 한 것 같다. 수업 끝나고, 점심 후 교수의 사무실에서 “잠깐” 페이퍼에 대해서 얘기하자고 했다.

나 왈: 교수님… 페이퍼를 아직 못 썼는데, 점수 깎이고 오늘 오후에 내면 안 될까요? [이때만 해도 그 날 중으로 끝낼 자신이 있었다.]
교수: 엉? 아직 페이퍼를 제출 하지 않았어?
나: 네… [죽고 싶다]
교수: 음. 오늘 제출하겠다고.. 그래 그럼 이멜로 보내라
나: 네? 벌점 없이요?
교수: [엄청 침착하게, 약간의 웃음까지 띠며] 응, 이멜로 보내.

헉.. 아직도 못낸 학생들이 여럿이었다는 얘기일까, 아님 내가 지금 빌빌거리는 과목이 여럿이라는 것을 알아서 봐준 것일까. 하여간 감사하고, 주제에 대한 얘기를 좀 했다.

나: 이러새 그래서 보아스가 주장한 내용이 초기진화론자들이랑 서로 [개인의지]를 이론상 차지하려고 한 것 같아서요 그래서 포스트모던이 어떻고, 자결주의가 어떻고.. 그룹 의지가 어떻고..
교수: 잉? 보아스는 그룹 의지와는 거리가 있는데? 역사특성주의 말고도 보아스가 주장한 것 diffusionism [문화 전파론]이 있잖아.. 네가 말하는 그룹 의지는 오히려 보아스가 주장하던 것과 상치되네.
나: 윽, 헛 짚었네요
교수: 너 논지를 첨부터 다시 생각해야 겠다.
나: 어쨌든 오늘 오후 7시까지 낼께요.
교수: 응

그러고 교수실을 나섰다… 그리고 페이퍼 일은 하나도 안 했다. 학생그룹 예산이 오늘 까지 내는 것이시리..

페이퍼를 쓰려 컴퓨터 앞에 앉으니 우선 전제가 틀린 글이라 신경이 쓰인다. 무시하고 쓰려니 지난번 페이퍼 냈을데 교수가 적어준 비평이 생각나서 움찔 움찔. 결국 못 썻다.

그리곤 7시에 있는 다른 수업에 가서 영화도 보고, 느긋하게 집에 돌아와서 걱정을 약간 하다가, 잤다. 어제 목요일도 전혀 페이퍼 일을 하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 제발 좀 하루 더 늦게 낼 때마다 점수가 깎이면 차라리 좋으련만.. T.T

개인/사회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너무나도 개인화되었기 때문에 이는 엄청난 힘이 된다. 자그마한 실수도 집어내주고, 글을 쓸때마다 날카롭게 논지평가를 해준다. micromanagement 가 맞다. 완전히 학술 파트너다. 근데, 조금 이 관계를 벗어나서 덜 촘촘한 강의/학생 관계를 성립하기가 불가능하다. 나 이거 안 하고 그냥 F 주세요.. 하면은 교수가 온갖 압박을 넣어서라도 일을 하게 만든다. 지난 봄학기때는 두가지 수업에서 마지막 페이퍼를 못 내고 그냥 F 주세요 했다. 지금까지 평균이 A이니, F가 20%라도 C+ 선에서 학점 받는다라는 생각.. 기숙사 문닫는 날 교수 둘다 내 방으로 전화를 걸어서 너 제 정신이 있냐, 지금 까지 A에 해당하는 일 했다가 왜 점수를 망치냐. 제출 날짜 연장줄테니까 제대로 해라, 라고 압박을 넣으셔서 결국 여름 내내 연구만 했다. –;

가끔은, 가끔은 수업을 그냥 계약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일 하면 A 받고, 안 하면 F 받는.. 날 성공시키려 하지 말고, 그냥 대학 지나가는 학생으로 바줬으면.. 기대가 높으니 부담스럽고 스트레스가 팍팍.

아직도 페이퍼 못 냈다. 워래 제출일이 화요일. 삼일 늦었구만. 마무리를 하고 있긴 하지만, 아마 내일 중으로 낼 수 있을 것 같다. 월요일에 교수를 만나서 뭐라 얘기를 해야 하나. 이젠 죽고 싶은 생각도 안 난다. 걍, 해탈 한 것 같다.

제목이랑 내용이랑 맞는지도 모르겠다.


게시됨

카테고리

,

작성자

태그: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