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운동권의 도덕적인 지도자 포지션 점유는 전략적인 실수 아니었나? 가끔 “진보 운동을 지지하는 멋진 나님”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나오는데, 그거랑 80년대의 비현실적인 도덕성 추구랑 뭐가 다른가? 진보적 아젠다를 지지하고, 투표하고, 참여하고, 개인적 정치 차원에서 실천하고, 기부하는 사람이 인성이 쓰레기든 아니든 상관이 있나? 예를 들어 싱글 남성이 도박 중독이라든지..
[글쓴이:] Yongho Kim 김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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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이 중요하다며 촛불집회에 합류한 시민…
“상식”이 중요하다며 촛불집회에 합류한 “시민”들이 동성애자, 노동자 등 소수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안 봐도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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껄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 예배 시간…
껄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 예배 시간 중에 언급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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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청년들과 너의 이름은 을 보고 왔는데…
교회 청년들과 “너의 이름은”을 보고 왔는데, 그냥 출산 장려 공익 광고 아닌가? 후생성에서 돈 받은 거 아냐?
“뒷이야기가 궁금하지? 늬들도 연애를 해봐~” 라고 속삭이는
악마의감독의 목소리가 느껴진다.. -
2012년에 그때 있던 서브리스를 나와서 현재 살고 있는…
2012년에 그때 있던 서브리스를 나와서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때는 HousingMaps.com 이라는 웹사이트가 꽤 도움이 되었다. 대략 그 동네의 가격을 살펴본 이후 그 동네로 가서 길에 렌트 사인이 붙어있는지 찾아보는 방식이었다. 오늘 레딧에 LA에서 렌트 찾을 때 무슨 사이트를 쓰냐는 질문이 올라와서, 다시 생각이 나서 웹사이트를 찾아가보니 무려 2005년에 시작되었던,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대단한 웹사이트였던 모양이다.
근래 들어 크레익리스트가 맵 뷰를 제공하기 시작함에 따라 사이트를 닫았다고 하니, 나는 이 사이트 역사의 끄트머리에 약간 사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케이타운 렌트가 얼마나 되나 싶어 찾아가보니 스튜디오나 원베드가 공포의 $1,400+ 대를 이루고 있다. (내 아파트는 2012년에는 $780이었고 이제는 $970) 요즘들어 발에 차이는 신설 초호화 콘도들이 $2,500+대를 이루고 있고..
내가 근래 들어 식료품 배달 서비스 같은 거에 돈을 쓰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나는 렌트를 지역 평균보다 50% 더 낮게 내고 남는 돈을 다 음식에 붓고 있었던 것이다..
헐 아파트에서 물이 새서 다른데 알아볼까 생각했는데 무서워서 못 나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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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미국식 이력서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항상 까다로왔다…
한국인에게 미국식 이력서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항상 까다로왔다. 한국식 이력서에 익숙해 있으면 상상도 못 할 발상을 가지고 내용을 만들어야 하니까, 그냥 “이력서 보내주세요” 라고 하면 한국식 이력서를 번역해서 보내주는게 보통이었다. 그 중 transferable skill 은 한국에서라면 “이 녀석이 듣보잡 인턴 몇 개 했다고 인사부 직원 앞에서 까불고 있어? 같은 반응을 이끌어낼 성격의 내용이기 때문에 제일 설득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도와준 이력서 작성자들은 모두 사실 이력서가 별로 안 중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뭘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을 했었나 생각도 되고.. 그런데 문득 사실 “미국식 이력서”로 검색하면 자세하게 다 나오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역시.. 다 나와있는데? 왜 아무도 기본 조사를 안 하는 거지?
최근에 다른 분에게 이력서 작성에 대해 설명드릴 기회가 있어서 내 옛날 이력서를 하나 드렸는데, 찾아보니 8년에 걸친 이력서들이 나와서 한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대학 2년을 마치고 2003년 여름 방학 인턴에 지원하면서 쓴 이력서.. 아마 2002년에 처음으로 쓴 내용을 다시 수정한 내용이었는데, 평범한 이력서. 지원한 인턴직에는 합격하지 못했다.
2003 Yongho Kim4학년이 되면서 2004년 10월에 대충 경력 다 모였다 싶어서 다시 만든 이력서. 일부 해외 경력을 강조하기 위해 왼쪽에 날짜와 장소, 오른쪽에 내용을 쓰는 포맷을 택했는데, 세련되게 나열하기 위해서 워드에서 각 파트 밑에 수동으로 공간을 띄우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에 줄을 추가할 때 마다 칸 사이를 수정해주었어야 했고, 한번은 전체적으로 폰트 사이즈를 줄이고 고생을 했다.
2004 Yongho Kim2005년 5월 졸업 후 LA로 가서 취업하기 위해 여기저기 노동조합 (SEIU99 등)에 연구(아마 Oppo Research)로 지원할 시절의 이력서. 누군가의 조언을 받아(대학 내 Career Devel Center 였나?) 경력을 세가지 분류로 나누어보았다. 이때도 지원한 곳들에서 연락받지 못했다.
2005 Yongho Kim민족학교에서 활동을 시작한 후 5년차인 2011년때 New Organizing Institute 의 Advanced Data Camp (7일 훈련 프로그램) 에 지원하기 위해 작성한 이력서. 이력서를 작성 할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관련된 경험들을 나열했다.
2011 Yongho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