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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학] 자유 인문과 개인/사회

    (아무래도 공개된 제목은 한글로 시작하는 것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겠지?)

    아무로 날 모르는 공간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좀 쏟아내면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해소 되지 않을가 싶다.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대학 내에서의 개인/사회 얘기인데 그에 대한 배경이 필요해서 자유 인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다. 영양가 없는 개인 얘기이니 -일종의 공개된 자학 自虐 – 알아서 하셈

    Liberal Arts [Humanities] (자유 인문)

    내가 이제 막 졸업하려고 하는 이 대학교는 사립 자유인문 (private liberal arts) 학교이다. 자유 인문이 뭔지는 2학년이 되서야 대충 감을 잡았다. 대략 모든 학문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배움의 전문화를 사양하고 학생들이 어떠한 분야라고 접할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는 공간이다. 철학과 화학 이중전공을 하든지, 미술과 경제학을 하던지, 물리와 젠더학을 하던지 학교에서 일체의 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권장하는 편이다.

    이러한 전통은 그리스/로마의 고전인문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우주적 인간이라나.. 그리고 초기에는 사립대 (동부의 프린스턴 예일등등)에 집중되었고 근간에는 주립대학에도 College of Liberal Arts 라는 형태로 퍼지는 것 같다.

    이곳 마캘리스터는 상위급에 속하는 자유인문교중 비교적 새롭게 등단했다. 1991년에 3억달러에 상당하는 금액의 기부금이 들어오면서 (당시 학교 총 자산이 4억 달라였다. 그 충격을 상상해 보시라) 엄청난 투자를 통해 지역권 상위 학교에서 국내 상위권으로 껑충 뛰어오른 케이스다. 그로 인해 인지도와 입학 경쟁률이 낮다. M은 웨버가 말하던 “새 자금” [new money] 에 바로 우리가 해당한단다.

    다른 학교와 비교해 뭐가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수업실의 평균 크기가 17명이라는 것은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참 잘 난) 교수가 학생들을 일일히 신경 써주고 그들의 연구물들이 최고급이 될수 있도록 지도 해줄 수 있는 환경이 된다. 교수들은 이곳에 하루에 거의 12시간씩 근무하며 학생에게 최고를 요구한다.

    나 같이, 고등학교의 기대도가 낮은데애 불만족을 느끼던 부르조아 학생에게는 최고의 환경이다. 아드레날린 농도가 엄청 높다. 하고자 하는 얘기는 여기서부터.

    페이퍼 하나 쓰기

    연구물이 최고라는 것은 페이퍼를 한번 써보고, 한번 훑어보고, 교수에게 개념을 이야기 해서 논조가 약한 부분을 뜯어고치고 하여간 개별적인 작품으로서는 어딜 가서도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을 이야기한다. 실제적으로 결과물이 최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기본 기대가 존재하니 이걸 만족하려고 글을 쓸때마다 꾸뻑 죽는다. 몇달간 죽어가며 (과에 따라서) 실험실/도서관/현장 연구하고, 그걸 또 며칠 걸려서 써대고, 그리고 드래프트에 대해서 교수가 뭐라뭐라 이야기 해주면 그걸 또 추가 연구하고 밤새며 다시 쓰고 대게 한계에 도달했다… 더 못하겠다.. 징그럽다.. 할 때 쯤 자포자기 한 상태로 페이퍼를 낸다. 보통 제시된 한계 날짜보다 하루 정도 늦는다. 나름대로 독창성이 있는 연구물이라고 생각한다. 일주일만 더 투자하면 깔끔하게 마무리될수 있는 페이퍼.. 하지만 그 다음 과제물을 끝내려면 그 페이퍼는 물 건너간 상태.

    첫 삼년은 좋아라 하며 일을 했었다. 혼신을 바쳐 글을 쓴다는 것이 매력적이고, 수업메이트도 다 기준이 이 정도이고, 교수가 자기 개인 생활 희생해가면서 까지 읽어주고 지도해주는 학교에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그런데, 이제 그럴 힘이 안된다. 학교 나와서 그냥 일이나 하고 싶다. 학문의 세계는 끝이 없다. 반론에 반론에 재반론.. 끝이 보이면 그 때 나와서 그 개념을 같고 일을 하면 되는데, 결론은 끝없는 논쟁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구조적 한계가 보이니 성적이 급강하한다는 것이다. 졸업도 못하고 쫓겨날 만큼..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이 그러지, 사유는 환경에 좌우된다고. 사실 관계가 바뀌어서 내가 수업 진도를 못 따라가니까 나름대로 변명을 대는 것이 아닐까.

    인류학 이론 수업에서 두번째 에세이를 써야 한다. 페이퍼도 아니고 겨우 6페이지 짜리 에세이다. 며칠을 고민해서 겨우 생각한게 개인의지라는 개념이 뒤르크하임이 suerorganic을 고안한 그 때부터 이리 저리 끌려다닌 개념이었으며 (정확히는 초기 진화론주의자.. 스펜서 및 모르건의 그것과 Boasians의 역사적 정의론사이의 쟁점) 그것이 말리노스키에 이르러서 협의를 보는 듯 하다가 다시 신진화론주의가이 큰 호응을 일으키니 포스트모던주의에서 본질적 부정을 통해서라도 개인의지를 보호하려 했다는 논지였다. 근데 제출 날짜가 지난 화요일 오후였고 이 주제를 겨우 생각한 것이 월요일 밤. 제일 큰 문제는 아직 내가 읽은 사상가들 중 19세기 후반기 Boasians/초기 진화론자와 1940년대의 신진화론 및 1970년의 포스트모던 사이에 있는 사상가들을 하나도 안 읽었다는 것이다. (1920년대의 구조주의, 기능주의 및 구조기능.. 말리놉스키, 에번스 프릿처드 그리고 랫클리프 브라운.. 그리고 레비스트로) 그러니까 이론의 역사를 세세히 엮어야 하는데 중간 지점이 완전히 공터상태.

    얘네들 못 여태 읽은 것 채우며 밤 세우고, 일하는 곳에도 이멜 띄우고 못 오겠다고 하고, 화요일 오후에 급히 급히 글을 쓰다가 결국 제출 시간 (화요일 5시)에 못 냄. 보통 과제물이 있을 경우 늦게 내면 얼마씩 점수가 깎이는 게 있는데 내가 받은 과제물에는 “화요일 5시까지 낼 것. 늦은 페이퍼는 안 받을 것임” 이라고 적혀 있다. 난 어떻게 되는 거야, 다 망친 건가? 그러니까, 여기서 F를 받으면, 현재 C- 상태인 이론 수업에서는 학점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고, 학점을 못 받으면 금년에 졸업은 불가능하게 된다. 금년에 졸업을 못하면 졸업 연기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재정 보조금이 더 안 나오고 학기당 일만오천불에 해당하는 등록금 전액을 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그럴 사정이 아니므로 자퇴로 이어지겠구나. 화요일 저녁 내내 스스로를 가책하며 어떻게라도 페이퍼를 마무리 해보려고 했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라고 생각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자살할 여건은 안 되는 것 같았다. 아직 공부 말고도 해보고 싶은 일이 널렸으니. 근데 자살에서 대학 중퇴로 생각이 이어지자 페이퍼 쓸 생각은 나질 않고 그 후 어떻게 할까라는 잡념만이..

    죽고 싶은 화요일이 지나고 수요일 아침, 수업에 들어갔다. 교수는 내가 페이퍼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직 눈치 채지 못 한 것 같다. 수업 끝나고, 점심 후 교수의 사무실에서 “잠깐” 페이퍼에 대해서 얘기하자고 했다.

    나 왈: 교수님… 페이퍼를 아직 못 썼는데, 점수 깎이고 오늘 오후에 내면 안 될까요? [이때만 해도 그 날 중으로 끝낼 자신이 있었다.]
    교수: 엉? 아직 페이퍼를 제출 하지 않았어?
    나: 네… [죽고 싶다]
    교수: 음. 오늘 제출하겠다고.. 그래 그럼 이멜로 보내라
    나: 네? 벌점 없이요?
    교수: [엄청 침착하게, 약간의 웃음까지 띠며] 응, 이멜로 보내.

    헉.. 아직도 못낸 학생들이 여럿이었다는 얘기일까, 아님 내가 지금 빌빌거리는 과목이 여럿이라는 것을 알아서 봐준 것일까. 하여간 감사하고, 주제에 대한 얘기를 좀 했다.

    나: 이러새 그래서 보아스가 주장한 내용이 초기진화론자들이랑 서로 [개인의지]를 이론상 차지하려고 한 것 같아서요 그래서 포스트모던이 어떻고, 자결주의가 어떻고.. 그룹 의지가 어떻고..
    교수: 잉? 보아스는 그룹 의지와는 거리가 있는데? 역사특성주의 말고도 보아스가 주장한 것 diffusionism [문화 전파론]이 있잖아.. 네가 말하는 그룹 의지는 오히려 보아스가 주장하던 것과 상치되네.
    나: 윽, 헛 짚었네요
    교수: 너 논지를 첨부터 다시 생각해야 겠다.
    나: 어쨌든 오늘 오후 7시까지 낼께요.
    교수: 응

    그러고 교수실을 나섰다… 그리고 페이퍼 일은 하나도 안 했다. 학생그룹 예산이 오늘 까지 내는 것이시리..

    페이퍼를 쓰려 컴퓨터 앞에 앉으니 우선 전제가 틀린 글이라 신경이 쓰인다. 무시하고 쓰려니 지난번 페이퍼 냈을데 교수가 적어준 비평이 생각나서 움찔 움찔. 결국 못 썻다.

    그리곤 7시에 있는 다른 수업에 가서 영화도 보고, 느긋하게 집에 돌아와서 걱정을 약간 하다가, 잤다. 어제 목요일도 전혀 페이퍼 일을 하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 제발 좀 하루 더 늦게 낼 때마다 점수가 깎이면 차라리 좋으련만.. T.T

    개인/사회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너무나도 개인화되었기 때문에 이는 엄청난 힘이 된다. 자그마한 실수도 집어내주고, 글을 쓸때마다 날카롭게 논지평가를 해준다. micromanagement 가 맞다. 완전히 학술 파트너다. 근데, 조금 이 관계를 벗어나서 덜 촘촘한 강의/학생 관계를 성립하기가 불가능하다. 나 이거 안 하고 그냥 F 주세요.. 하면은 교수가 온갖 압박을 넣어서라도 일을 하게 만든다. 지난 봄학기때는 두가지 수업에서 마지막 페이퍼를 못 내고 그냥 F 주세요 했다. 지금까지 평균이 A이니, F가 20%라도 C+ 선에서 학점 받는다라는 생각.. 기숙사 문닫는 날 교수 둘다 내 방으로 전화를 걸어서 너 제 정신이 있냐, 지금 까지 A에 해당하는 일 했다가 왜 점수를 망치냐. 제출 날짜 연장줄테니까 제대로 해라, 라고 압박을 넣으셔서 결국 여름 내내 연구만 했다. –;

    가끔은, 가끔은 수업을 그냥 계약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일 하면 A 받고, 안 하면 F 받는.. 날 성공시키려 하지 말고, 그냥 대학 지나가는 학생으로 바줬으면.. 기대가 높으니 부담스럽고 스트레스가 팍팍.

    아직도 페이퍼 못 냈다. 워래 제출일이 화요일. 삼일 늦었구만. 마무리를 하고 있긴 하지만, 아마 내일 중으로 낼 수 있을 것 같다. 월요일에 교수를 만나서 뭐라 얘기를 해야 하나. 이젠 죽고 싶은 생각도 안 난다. 걍, 해탈 한 것 같다.

    제목이랑 내용이랑 맞는지도 모르겠다.

  • [펌] Red v. Blue

    Red v. Blue

    Carl the Gee-Whiz Wonder Boy, 11/04/2004

    저 시뻘건 지역을 보쇼

    하지만 이를 제대로 섞어서 본다면 미국이 훨씬 덜 나뉘어 보입니다.

    이게 최고죠

  • 다음 학기 American Studies-미국인학 수업

    저희 대학의 American Studies (미국인학) 2005년 봄학기 수업 입니다. 이년 전에 문을 막 열었을때 학기당 다섯개 정도 하던 것에 비해서 엄청 늘어난 셈입니다. 다른 학과에서 들어온 수업이 절반 이상이긴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좋네요. 아이고 진작에 이럴 것이지…

    수업번호, 제목, 교수

    101 인종과 인종차별 탐험 – Karin Aguilar-San Juan
    108 정책용 수학도구 (101과 병행) – David Ehren
    194-1 사회정체성 및 의료화된 인체 – Cynthia Wu
    194-3 아시안 미국인 문학 및 문화 이론 Cynthia Wu
    194-5 미국내 인간 진열의 문화들 – Cynthia Wu
    194-7 미국 여성주의와 인종/계급 – Joan M. Ostrove
    194-9 African-American 종교들 – Peter Glen Harle
    194-11 문화인류학 – Diana Dean
    194-13 LGBT학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및 Transexual) : 성 정체성의 여백과 식민 휴우증 – Scott Morgensen
    240 교육 내의 인종/문화/민족성 – Marceline Simone Dubose
    285 아시안 미국인 공동체 및 정체성 – Karin Aguilar-San Juan
    294-1 파리의 흑인들 – Duchess Harris
    294-3 젠더의 심리학 – [배정 교수 없음]
    294-7 미국 역사의 여성과 노동 – Peter Rachleff
    294-9 페미니스트 연극 – Beth Cleary
    394-1 African-American 문학, 1900 년까지 – Daylanne K. English
    394-3 20세기 African-American 문학 – Daylanne K. English
    394-5 미국 원주민 종교 전통 – Siems
    394-7 매체상의 Blackness [흑인성] – Leola A. Johnson
    394-9 인종 차별을 이해하고 저항하기 – Kendrick T. Brown
    394-11 자유 운동: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 Peter Rachleff
    400 졸업 세미나: 미국학 내부의 비판적 시선들 – Karin Aguilar-San Juan
    494-3 프랑스어 문화권 [Francophone] 학 : 헤이티 – Joelle F. Vitiello
    494-5 히스패닉 영화 및 기타 매체 – María Elena Cepeda

    인간 진열의 문화와 해이티 [Haiti]는 좀 의외의 코스이고, 나머지는 맥에서 자주 보던 내용이군요. African-American 종교들 가르치시는 Harle 교수는 주 연구분야가 티벳 이민자 전통 종교인데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고. 자유 운동은 소재가 색다르지만 구조는 원래 수업이랑 많이 비슷하고. 미국 원주민 전통을 가르치는 Siems 교수는 내년에 오는가보는데 참 궁금..

  • 누가 여성주의를 비난하는가

    이성애규정화 체제에서 Intersex에 속하지 않고 살아남은 주류 남자로서의 사회역사적 특권을 나름대로 이용해 펨님의 “Minor로서의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지원사격을 보냅니다.

    전제

    역사는, 그리고 사회는 항상 주류/기득권층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존재해 왔다. 이들은 남성/이성애/백인/부르주아/비장애인/국적/언어능력/종교 등의 사회 인식 틀의 중심에 자신들을 위치 시키며 이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 끝없는 비인간화 [otherization]과 차별로 대해 왔다.
    여성주의 이론은 근대화 초기의 여성주의 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사회적 차별의 틀을 해체하고 이념제 연대의 토대를 마련했다.

    운동 내부에 존재하는 계급을 비롯한 특권적 차이점들은 근근히 모든 저항 시도를 비판하는 손쉬운 도구로 쓰여졌다는 것.

    이 전제를 비판하시려면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든가. 욕플을 달던가. “너 같은 놈은 여성주의자에게 매달려서 받아먹으려는 얌체족이지”라고 몰던가. 알아서 하세요.

    딱 두가지만 지적하자면,

    역차별이라니, 될 소리를 하시라. 미국 공화당에는 인종무효론에 기반한 정책 [color blind policy]이 있습니다. 200년동안 충분히 착취했으니 이제 부턴 공평한 사회를 열어가며 인종은 원래 만들어진 개념이란 것을 인지하며 살자는 취지. 그런데 백인의 관점에서 참 즐거운 것이 이제부터 공평해진 것이진 것이니 흑인들에게 대해 괜한 원죄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이제 흑인에게 구조적으로 임금을 덜 주거나 언어적으로 폭행하는 일이 있어도 공평한 사회이므로 그런 일들은 경제구조로 설명 내지는 합리화가 된다는 것이죠. 참 살기 좋은 세상입니다. 광주 학살은 어차피 그때 특수한 역사적 상황이 있었던 것이고, 그런 정치적 선택을 통해 쌓아올린 미국의 부는 근면한 국민 정체성의 결과라죠. 이러한 한쪽만 맘편한 공평제도를 비판하니, 왜 옛날의 나빳던 인종 개념을 다시 가져오냐, 너 인종차별하냐 라는 한심한 소리를 듣습니다. 여성문제도 똑같습니다. 50년 외세에 의한 수탈의 역사를 시장논리로 받아들이시렵니까, 아니면 남성의 뿌리깊은 특권구조에 대해서 생각해보시렵니까?

    주둥아리 좀 닥칩시다. 여성주의는 남성들이 이에 대해서 옳냐 그르냐 왈가불가 하자고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저항 운동의 시발점은 억압된 사람들이 마음을 놓고 문제를 토론할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인종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흑인들이 체제에 대해 분노를 토해도 총에 맞아죽지 않을 환경부터 마련하자는 것이죠. 오웬님이 [통념적으로 인정되는] 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鍮摸?纛?자치권에 촛점을 맞춘 페미니즘의 글을 쓰자 마자 우후죽순으로 달리는 적의적인 글은 여성주의 운동에 있어 이러한 공간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성이 어쩌네 여성주의가 어쩌네 하는 남성끼리의 담론 구조내 여성을 사물화 하여 입을 꽁꽁 묶는 것이죠.

    고로 남성들. 할 말 많다는 것 이해하겠습니다. 몇천년의 세월이 우리들의 어깨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일까요? 다같이 입 좀 닥칩시다. 조건부를 달기 전에 상대편을 읽고,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억압적 순환구조의 역흐름으로 내딧는 첫 걸음입니다.

    용호

    연관된 글: (그리고 이 글 쓴 분들은 서로 서로 트랙백 좀 쓰시면 읽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거라는…)

    오웬, 행복한 페미니즘
    노바리, 페미니즘?
    永革, 여성주의와 맑스, 그리고 나
    노바리, 군대와 페미니즘?

  • 라띠노, 히스패닉, 치까노

    글 보정

    간만에 친구랑 카페에 갔다가 프레스콧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되었어요. 이년 전에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수강하며 읽은 글이었는데.. 얘가 느닷없이 프레스콧 패러다임.. 남미 인종의 열등성이 아니라 스페인 제국이 망하고 있다는 이론이었어. 하구 바로 고쳐주더라고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스페인 제국 이야기도 있었고 아무래도 걔 말이 맞는 것 같다는 T.T 다시 프린트해서 읽을 여력도 없구.. 이에 고칩니다. 청교도/카톨릭 – 앵글로색슨/라틴계통의 인종적 비교는 시대의 담론(지금도 건재한)이었지만 프레스콧 패러다임은 아닙니다.

    200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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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부터 였는지 미통계청이 (Census Bureau 가 통계청 맞나 모르겠다) 2000년 인구조사 결과 중 히스패닉으로 표시되어 있던 것을 “히스패닉 또는 라티노” 표시해놓았어요 [참고 문헌 은 Overview of Race and Hispanic Origin]. 정확한 표기는 “히스패틱 또는 라티노, 비 백인”[Hispanic or Latino, non white] 이 되겠네요.

    이 표현에 들어 있는 정치 역학으로 글을 풀어보려 합니다. 이중 많은 부분이 미국라티노학 [U.S. Latina/o Studies]의 핵심주장 재탕이란 것도 밝혀둡니다.
    (더 보기…)

  • Race, American Studies, Black

    기억나는 대로 장면들 몽따즈

    1. 손바닥. 대학 1학년이 되었을때.. 아프리카 (아프리카인을 의미하는 African 과 미국내 흑인을 의미하는 African-American은 정치언어적으로 훨 다릅니다) 친구들과 밥을 먹다가 깜짝 놀랐다. 이 친구는 동남부에서 와서 반투족 특성이 강하고 – 키크고 피부가 아주 검은 – 아마 우간다 쯤에서 왔을 것이다. 근데, 얘의 손바닥은 나랑 똑같은 분홍오렌지색이었다. 깜짝 놀란 나 왈, “손바닥 피부 색깔이 다르네”. “응, 몰랐냐”. “첨본다”. “흑인 첨보냐”. “응, 흑인을 본 적이 없다”. 친구, 슬쩍 웃더니, “말 조심해라.. 그런말 크게 했다가는 혼난다”.

    주:
    ㄱ. 한국 사회 구도 책은 참 친절도 하다. 세계지도에 여러 인종들을 표시해주곤 “얘내들은 더 검은 흑인”, “얘내들은 아랍”, 얘내들은 백인 등등 사진을 보여준다. 도감도 처럼.
    ㄴ. 실제로 흑인을 본 적이 없다. 영화에서 나오는 흑인은 주로 몇 씬 나오다가 죽는다. 주인공이 되는 경우도 그리 없다.
    ㄷ. 내가 온 국가도 피부 톤이 옅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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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헤게모니 세력들의 유기적 결합

    술이부작님의 “정치와 경제의 민주적 통제” 에 트랙백 합니다. 전 이렇게 꼭 집어주는 글이 제일 좋습니다 ^^

    답하는 것이 젤 쉬우니까, 우선 답부터 하구, 그리고 한번 들어본 가능성있는 반자본주의 대안을 제시해보겠습니다.

    우선 “결론만 다를뿐 두 글 다 [정치상의 민주주의는 경제사회주의를 이끌어낸다] 라는 전제에 동의한다” 라는 님의 분석에 반대 의견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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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경제, 정치구조, 그리고 Julian Steward

    Svinna 님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그 동일해 보이는 필연성에 배팅하기 ” 에 트랙백 합니다.

    아주 단순한 듯 하면서 생각해보지도, 읽어보지도 못 한 이야기이이다. 걍 옛날 옛적에 반박되어서 다시는 살아남지 못한 담론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우선 시장우선자본주의 + 민주주의 논리는 “시장”의 선택이란 것이 수많은 개인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서 만드는 것이라고 출발한다. 개인 A가 1에 해당하는 경제적 행동을 취하고, 개인 B가 -2에 해당하는 경제활동을 하면 거시적인 시장의 행동은 -0.5 이므로, 개인들의 서로 배치되는 행동을 조합했음로, 민주적이다, 하는 것이 논지이죠. 모, 좀 간단한 대답이긴 합니다만 계산하기 좋아하고 논쟁은 질색인 경제학부도들이 즐겨 써먹는 수법이죠.
    (더 보기…)

  • 성전환

    몇 주 전 (으헉, 벌써 몇 주가 되었다) 펜더님의 글에 다렸던 글 같은데… “내가 여자라는 것을 알고 부턴 꼭 그것만 꼬집어서 악플이 달리더군”의 요지의 글이 달렸었다. 흐음, 인터넷에도 그런 일이 있구만? 그것도 인터넷 민주주의공화국 한국에서? 모 그래서 성전환을 하기로 했다. 진짜 내가 여자로 인식되면 사람들의 반응이 다르나.. 하다가 못 열받아서 참겠으면 커밍아웃하면 되니 모 리스크도 없고, 순전히 호기심으로 해보는 거다. 스킨도 아기자기 하게 바꾸고, 사진도 korean girl 을 구글에서 찾아서 어떤 일본 펜팔사이트에서 특별히 이쁘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은 얼굴을 찾아서 붙였다. (음, 귀엽긴 하다.) 이 글은 당분간 비밀글이다. 한달 정도 잠가둘게다. 새어나가기만 해봐라, 미디어몹아.

  • 운을 떼면서

    1. 경험에 의지하라

    유권자 등록 운동가 아말리아가 한 말이다. 그때 참 많이 찔렸다.

    IWFR에서 금년 9월에 미네소타 FR를 한단다. 그거랑 연결해서 지난 주에 지역 운동가 세미나 비슷하게 뭘 벌였다. 밥도 준다고 해서 따라가 보았더니, 세상에.. 이틀동안 세미나가 있는데 대부분이 유권자 등록에 대한 것이다. 첫 시간은 그래도 좋았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란 상식적이면서도 특정사회이슈에 집중하는 대부분의 단체들은 잘 논하지 않던 주제라던가, “유권자 등록과 소수민족의 정치 파워: 50년 계획” 같은 활동은 신선했다. 제일 인상 깊은 부분이 젤 첨에 시작하면서 아말리아가 “자, 오늘 모두에게 유익한 하루가 되기 위하여 일련의 원칙에 동의해 봅시다” 하며 제시한 다섯개 원칙이었다. 모 고용주들이 나름대로 기업 정체성 만들기 위하여 그럴 듯한 영어 단어를 조합해서 첫글자로 단어 만드는 것 있잖아. 모 3G라든지, 5E 그런거. 그래서 ROPES라고 respect,, (기억이 안 난다).. 해놓고선 Experience: 경험에 의지한 말을 하자 라고 했는데 이게 참 찔렸다. 기왕 나중에 이견이 있어서 싸울 것이면 논리가 그럴 듯해서 싸우거나 어디서 읽은 것 가지고 다투지 말고 일일 운동 경험에 입각한 자료로 토론을 하자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나같은 자봉자들은 참 무례한 불청객이다. 10년 이상 이지역에서 투쟁하고 있던 운동가를 자원해서 도우러 와서 쪼끔 일하다가 대뜸 하는 말이 “요걸 바꾸자”다. 학자들이 노조들은 옛날의 실수를 만회하고 이민자들을 적극 후원해야 될것이다 라고 하면 곧이 곧대로 믿어서 그걸 또 막무내가로 민다. 일은 벌려놓고 책임은 안 지는 형태다.

    경험에 의지한 글. 멀리 못 가지만 해 보긴 해봐야 겠다.

    2. 민족부터 까야겠다

    배운대로 착실하게 민족부터 까야겠다. 안더슨을 괜히 읽었나.

    3. 언어의 탈구조화를 지향

    한국어에선 Black, Negro, African-American, West Indian 이 죄다 “흑인”이다. 지난번에 딴지에서 누가 매트릭스에 대해 쓰면서 Af-Am 교수인 코넬 웨스트를 “아프리카-미국학 교수”으로 소개했다. 이는 일차적으로 African-American Studies가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면도 있겠지만, 다른 방면으로는 Af-Am을 아예 미국의 일부로 인식을 하지 않는, 개념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본다. 라티노, 치까노 chicano, 보리꾸아 boricua, 히스패닉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미국 원주민 (연방 정부를 상대로 법적 주권을 행사할수 있는)과 북미 원주민의 흐릿함도 문제이고. 재작년 오마이에서 “코시안” (korean+asian)이란 개념을 소개한 적도 있었다. 사회의 탄압을 견디다 못해 “코시안”이란 용어를 채택한 그쪽 ngo 사람들도 딱하지만 (한국이 일본이 다 되려고 하나보다. 지들은 아시아에 있지 않다고 우길려는 꼴을 보니) 거기에 kor 자 하나 들어갔다고 나라가 망한다느니 게시판에서 난 난리는 나중에 따로 보자.

    어디서나 억압받는 계층의 전략이 그렇지만 미국의 인종적 소수그룹들은 사회의 주류적 세계 및 언어관을 흡수하면서 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들에게 들이대어진 창을 거꾸로 돌려 자아 존재를 위한 논리 개발을 진행하여 왔다. 이러한 헤게모니의 내부 판갈이는 억압받으면서 사회 구조의 모순과 주류적 세계관의 불합리함을 직시할수 있는 이들이 이야기할 때 의미가 있는바, 한국에서 인종에 관한 언어적 경직은 미국통 백인들의 입김 말고도 이종차별적 구조의 피해자가 머릿수로 모자라는 것에 인한 것이 아닌가..의심이 된다.

    인종 인식의 다양화와 인종적 hegemonic discourse (이거 많이 써야 하는 표현인데 한글로 어떻게 되는지…) 는 독자적 언어체계를 갖추지 않고선 귀에 귀걸이에 국한되어 버릴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라티노 정치적 연대 어쩌구 쿠바인 냉전논리의 백인 어쩌구 해도 “남미-갈색피부-이국적 인간들”로 묶어버리는 기존 논리는 충분히 흡수할 역량이 있으며 기껏해야 표현 좀 더 배웠네로 끝나.

    고로 글을 쓰면서 기본 인종에 관한 한국어 단어들은 그 단어가 가리키는 방향이 주류적인 의미일 경우에만 쓰고 나머지는 모조리 영어로 대체하도록 한다. 혹시 한글 단어의 창의적인 응용 및 몽타쥬가 가능할 경우 자주 써서 대체 용어 생활화를 유도하고 (하지만 코시안 같은건 빼고) 정 고까우면 까스떼야노로 도배해 버리기로 한다.

    시작하기엔 충분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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