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LS 교회 외국인 예배 기술

본 소(小) 기술은 부산 LLS 교회 (예장 통합)의 외국인 예배에 2005년 5월-6월 동안 두번 참석 하고 관찰 한 바와 당 현상의 subversiveness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 해 본 것을 요약 한 것이다. 현장 참여 기간이 10시간도 되지 않아 (3시간 예배 + 4 시간 계획 토론) 유물적인 관계 기술보다는 상상/추측한 내용이 지배적이다.


중간 결론:

  • 반도에서 이주 노동자는 특별히 민중 신학의 길을 따르는 목사의 지도 하에 있는 일부 소수 교회가 아니라도 보수 복음주의의 관심사 중의 하나인 라는 면 때문에 사회혁명적인 요소를 교회 내부로 끌고 올수 있는, 이를테면 트로이의 목마이다
  • 세속 운동권을 보더라도 이주 노동 투쟁의 주력이 되고 있는 인권계는 좌우익이 어느 정도 섞여 있기 때문에 바닥을 잘 모르는 목사들은 헷갈려 할 가능성이 높다

좀 더 살펴봐야 할 점들:

  • 재한 이주 노동자들은 동일 공권력을 상대로 투쟁 한다는 점 밖에는 문화/언어적 공통점이 없는 것 같은데,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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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에 교회 내 두 사람이 (청년부 간부급 인사와 권사 한 분) 시작한 영어 예배 (대외 이름) 또는 외국인 예배 (실제 내용, 이하 외예)는 약 20명 정도가 참석하고 있으며 아직 자원자와 참석자 모두 부족한 상황이다. 교회측 (관리와 신자층 모두)에서는 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하다고들 말한다.

두 사람 중 특히 권사님 측이 선교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편이며 (선교 외에 지역 소규모 프로젝트도 단독으로 진행 중) 해외 선교, 버마를 강하게 밀고 있는 중이다. 권사님이 이해 하는 국제 관계 속에서 재한 이주 노동자들은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선교 대상이며 이들을 훈련 시키며 관계를 맺어 나가는 중에서 해외 선교에 더욱 추진력을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계시다. (막 공학 박사 학위를 딴 교인을 목사로 훈련 -.-; 시켜서 본국 인도로 파송 할 꿈을 갖고 계시다.)

권사님 (이하 A)이 직위가 가지는 아우라/실권을 이용 해 이런 저런 교회 자원 이용 (타 부서 예배실 이용 허락이나 인력 동원 등)의 길을 열며 목사와 당회를 상대로 로비에 집중 하는 반면 청년부 간부(이하 B)는 참여 교인들과 밀착 연락망을 유지하며 청년부 및 고등부에서 예배 지도자들과 자원 봉사자들을 데려 오는 것을 맡고 있다.

교회가 적어도 소규모 이상은 되고 실세도 꽤 있지만 실제 외예 청객이 열명을 넘도는 상황에서 이를 선뜻 맡을 목사가 없다는 것이 첫 문제. 자의반 타의반으로 청년부 담당 부목사가 동원 되긴 했지만 태도가 미지근하여 A와 B는 이에 크게 만족하지는 않는다. 가끔 예배 외의 일이 있을 때면 나타나지 않고, 예배가 끝나면 저녁 식사가 제공 되는데 이에도 자주 불참 한다고 한다.

둘째로는 아직 정식으로 공인된 예배 시간이 아니기에 전담 부서가 없고, 그러기에 예배실 또한 그 때 그 때 마다 청년부에서 고등부 그리고 중등부로 옮겨 다니는 상황이다. 그래서 외예의 logistics는 B가 가지고 오는 라면 박스를 통해 해결 되는데, 이에는 국가별 국기를 크레용으로 그린 종이, 이들 국기를 붙일 테이프, 커피와 차 봉투 다수, 연필 볼펜등, 연락망에 포함된 외국인들과 교회측 인력의 이름표등이 들어 있다. 예배실 입구에 국기들을 붙여놓으면 교인들이 좀 더 편하게 (자기 집처럼) 느낀다고 B는 설명 하는데 글쎄 효과가 있을지.

셋째는 예배 사회, 찬양 인도등을 맡는 청년 공급의 불안정. 고정 인원 두세명을 빼고는 참석률이 와따리 가따리 하고, 전면에 서서 섬기는 것 말고도 외국인들과 같이 앉아서 이야기 해주는 이들도 필요한 데 여러 면에서 인원 부족 현상. 간혹 할아버지 류의 예외 참석을 무서워 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들이 소수인지는 파악 할 수 없었다. 이 점에 대해 나는 그넘의 영어 숭배 현상을 이용해서, 외예 참석은 영어 실전이 될수 있다 라고 청년들을 꼬시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라고 제안 해 보았는데, B씨는 그러한 에 불편해 하며 순수 외예라는 이유 때문에 참석하는 것이 좋을거라고 이야기 했다. 흘 그게 맘대로 되나요..

이 교회는 예배가 3부 있고 오후에 찬양 예배, 청년 예배 그리고 성경 공부 순서가 있으며 그 후 4시 30분 경에 외예 예배가 있다. 청년들은 대부분 오후 예배에 모두 참석 함으로 (나 처럼 PR상 3부 아침 예배에 참석하는 이도 더러 있지만) 이 시간에 이르면 많이 지쳐 있다. 준비 과정은 라면 박스를 가져와 그날의 예배실 입구에 국기들로 단장을 하는 것, 테이블을 하나 차려 이름표들을 늘어 놓는 것 그리고 의자들을 배치 하는 것이 있다. 준비가 끝나면 B씨는 핸펀으로 한번 쭉 예배 참석 재확인을 한다.

청년들이 띄엄 띄엄 들어서기 시작하고 교인들은 대부분 시간에 비교적 정확히 맞추어서 한꺼번에 모인다. 영어 찬양이 두어 세 개 있는데 사회를 보는 분은 너무 긴장해서 사회를 하시는 관계로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면서도 찬양 리더 (기타를 들고 있던가)는 비슷한 영어이지만 자신있게 멘트를 달아 (앞서 제안한 일까?) 부드럽게 넘어간다. 그 후 목사님의 영어 설교가 있는데 우리 아버님의 스페인어 설교와 대동소이 하다. 예배가 끝나면 저녁 식사가 제공되는데 여기 봉사하시는 집사/권사님들은 고기 선별을 조심스럽게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힌두교/이슬람교 관련) 에큐메니칼 교파의 위력인가? 상관 없는 필수 사항인가? 식사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는데 주로 B씨가 근황들을 확인하는 것이 주 화제가 된다.

교인 구성도는 유학생이 4-5명, 이주 노동자가 2-3명, 청년부 동원 인원이 2-3 명 정도가 된다. 준비되어 있는 이름표는 훨씬 많은데 이들을 다 만나지 못했다. 유학생은 주로 석사 및 박사 과정, 그리고 다들 공학 과정이다. (건축 공학, 지반 공학 등등) 문서 구비 여부는 짐작 하시는 대로다. 노무현 정부 주도의 개정 산업 연수생 제도가 도입된 후 문서 미비 이주자 색출 및 추방 작업의 강도가 한층 더 높아졌다는 (부시 한 것 그대로 따라 했구나..) , 그래서 막 출범하던 예외 출석률이 낮아졌다는 것이 A&B씨의 진단이다.

미국의 이민노동과 교회, 그리고 이민노동 조직화 노력을 보면 최소 50%에서 90%에 달하는 라티노 이민자들 (멕시코와 중미 발 비율이 압도적인)을 생각 할 경우 스페인어 하나만 갖추면 무난히 이중/원어 조직화를 꾀할 수 있으며 의식화 또한 빠른 것에 비하여 여기 LLS 교회는 도대체 공통 언어가 없다. A씨는 영어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하시는데 적어도 50%에게는 영어가 (비교적) 능숙한 외국어일뿐 편하게 신앙 또는 사상등을 토론 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님에 나는 영어로 효과적인 조직화를 꾀할 수는 없다고 본다. 최소한 따갈로그어와 중국어 정도는 갖추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고, 이주자들을 문서 구비 여부 / 원 국가 계급 / 절대 이민 수 / 이민 증가율 등으로 세분화한 실태 조사를 해서 핵심 투자 언어를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노동장 사고, 고용 차별, 해고 등등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냐는 나의 추궁에 A 씨는 서면인가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인권사랑모임 (이 이름이 맞던가?)과 협력한다고 그러시고 차별 대응 문제는 유사 사역을 가지고 있는 교회들끼리 정보 교환도 하는데 특히 중국인 선교에 치중하는 수영로 교회의 역할이 크다고 이야기 하셨다. 그런데 인권사랑모임을 언급하면서 뭔가 주저하는 모습이 보이던데 왜인지는 감이 잘 안 온다.

A씨에 의하면 (아직 기독교인이 아닌) 교인들의 관심은 사업장에서도, 사회에서도 관계를 맺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친구” 관계를 맺고 몇십분만이라도 이야기를 같이 해보려 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공간을 마련해 주는 교회의 관심사는 선교에 있는 것이고 (이 부분은 확인하지 않았지만, 그럴 만 하지 않을 까 생각된다. 사실 교회 관심사의 포커스 – 대 에 따라서 사역의 정치적 방향이 설정되는 것이고)

A씨는 이후 버마 단기 선교에 가셨고, 이에 대한 (추후 선교에 대한 투자) PR용 비디오가 찍혀 교회 홈페이지 자료실에 지금 올라와 있는데 여기 내가 최근에 읽은 니니르웬의 버마 현 정부에 대한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내용이 올라올지 궁금했지만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어렵습니다”라는 내용이 다라서 조금 김이 빠졌다. 비디오를 보니 간호사인 B씨가 의료팀에서 활동하는 것이 보이는데 그러니까 B씨의 국내 선교와 해외 선교의 연결 고리에 이유 한 가지가 더 있었던 것이다.

LLS교회의 버마 선교를 보면 PC 카페와 신학교등을 운영 또는 계획 중에 있는데 그 중 특기 할 만한 것이 동남아 반도 3개 국가가 지형적으로 가까워 변경 지역에 인프라를 구축하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모든 국가에 선교를 할 수 있다는 A씨의 구상인데.. 글쎄 비포장도로의 접근성과 경부고속도로의 접근성이 같을까? 그리고 좀 더 포괄적으로 한류 및 경제 규모 성장으로 인한 한-아 자본 이동의 영향/파괴력등을 등에 업고 교회들이 세게 밀고 나가는 형세인데, 60년대 케네디 정부가 라틴아메리카 등지를 향하여 자신만만 하게 밀었다가 망한 실패작 Alianza para el Progreso 꼴이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원 계획은 남한에 머무르는 석주 모두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었는데 돌발 상황이 발생해 두 번만 참석하게 되었음. 당시 연락처등은 암호화해서 (ACL 기반의 접근 제한) 여기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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