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Yongho Kim 김용호

  • 라띠노, 히스패닉, 치까노

    글 보정

    간만에 친구랑 카페에 갔다가 프레스콧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되었어요. 이년 전에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수강하며 읽은 글이었는데.. 얘가 느닷없이 프레스콧 패러다임.. 남미 인종의 열등성이 아니라 스페인 제국이 망하고 있다는 이론이었어. 하구 바로 고쳐주더라고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스페인 제국 이야기도 있었고 아무래도 걔 말이 맞는 것 같다는 T.T 다시 프린트해서 읽을 여력도 없구.. 이에 고칩니다. 청교도/카톨릭 – 앵글로색슨/라틴계통의 인종적 비교는 시대의 담론(지금도 건재한)이었지만 프레스콧 패러다임은 아닙니다.

    200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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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부터 였는지 미통계청이 (Census Bureau 가 통계청 맞나 모르겠다) 2000년 인구조사 결과 중 히스패닉으로 표시되어 있던 것을 “히스패닉 또는 라티노” 표시해놓았어요 [참고 문헌 은 Overview of Race and Hispanic Origin]. 정확한 표기는 “히스패틱 또는 라티노, 비 백인”[Hispanic or Latino, non white] 이 되겠네요.

    이 표현에 들어 있는 정치 역학으로 글을 풀어보려 합니다. 이중 많은 부분이 미국라티노학 [U.S. Latina/o Studies]의 핵심주장 재탕이란 것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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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ace, American Studies, Black

    기억나는 대로 장면들 몽따즈

    1. 손바닥. 대학 1학년이 되었을때.. 아프리카 (아프리카인을 의미하는 African 과 미국내 흑인을 의미하는 African-American은 정치언어적으로 훨 다릅니다) 친구들과 밥을 먹다가 깜짝 놀랐다. 이 친구는 동남부에서 와서 반투족 특성이 강하고 – 키크고 피부가 아주 검은 – 아마 우간다 쯤에서 왔을 것이다. 근데, 얘의 손바닥은 나랑 똑같은 분홍오렌지색이었다. 깜짝 놀란 나 왈, “손바닥 피부 색깔이 다르네”. “응, 몰랐냐”. “첨본다”. “흑인 첨보냐”. “응, 흑인을 본 적이 없다”. 친구, 슬쩍 웃더니, “말 조심해라.. 그런말 크게 했다가는 혼난다”.

    주:
    ㄱ. 한국 사회 구도 책은 참 친절도 하다. 세계지도에 여러 인종들을 표시해주곤 “얘내들은 더 검은 흑인”, “얘내들은 아랍”, 얘내들은 백인 등등 사진을 보여준다. 도감도 처럼.
    ㄴ. 실제로 흑인을 본 적이 없다. 영화에서 나오는 흑인은 주로 몇 씬 나오다가 죽는다. 주인공이 되는 경우도 그리 없다.
    ㄷ. 내가 온 국가도 피부 톤이 옅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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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헤게모니 세력들의 유기적 결합

    술이부작님의 “정치와 경제의 민주적 통제” 에 트랙백 합니다. 전 이렇게 꼭 집어주는 글이 제일 좋습니다 ^^

    답하는 것이 젤 쉬우니까, 우선 답부터 하구, 그리고 한번 들어본 가능성있는 반자본주의 대안을 제시해보겠습니다.

    우선 “결론만 다를뿐 두 글 다 [정치상의 민주주의는 경제사회주의를 이끌어낸다] 라는 전제에 동의한다” 라는 님의 분석에 반대 의견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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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경제, 정치구조, 그리고 Julian Steward

    Svinna 님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그 동일해 보이는 필연성에 배팅하기 ” 에 트랙백 합니다.

    아주 단순한 듯 하면서 생각해보지도, 읽어보지도 못 한 이야기이이다. 걍 옛날 옛적에 반박되어서 다시는 살아남지 못한 담론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우선 시장우선자본주의 + 민주주의 논리는 “시장”의 선택이란 것이 수많은 개인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서 만드는 것이라고 출발한다. 개인 A가 1에 해당하는 경제적 행동을 취하고, 개인 B가 -2에 해당하는 경제활동을 하면 거시적인 시장의 행동은 -0.5 이므로, 개인들의 서로 배치되는 행동을 조합했음로, 민주적이다, 하는 것이 논지이죠. 모, 좀 간단한 대답이긴 합니다만 계산하기 좋아하고 논쟁은 질색인 경제학부도들이 즐겨 써먹는 수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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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전환

    몇 주 전 (으헉, 벌써 몇 주가 되었다) 펜더님의 글에 다렸던 글 같은데… “내가 여자라는 것을 알고 부턴 꼭 그것만 꼬집어서 악플이 달리더군”의 요지의 글이 달렸었다. 흐음, 인터넷에도 그런 일이 있구만? 그것도 인터넷 민주주의공화국 한국에서? 모 그래서 성전환을 하기로 했다. 진짜 내가 여자로 인식되면 사람들의 반응이 다르나.. 하다가 못 열받아서 참겠으면 커밍아웃하면 되니 모 리스크도 없고, 순전히 호기심으로 해보는 거다. 스킨도 아기자기 하게 바꾸고, 사진도 korean girl 을 구글에서 찾아서 어떤 일본 펜팔사이트에서 특별히 이쁘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은 얼굴을 찾아서 붙였다. (음, 귀엽긴 하다.) 이 글은 당분간 비밀글이다. 한달 정도 잠가둘게다. 새어나가기만 해봐라, 미디어몹아.

  • 운을 떼면서

    1. 경험에 의지하라

    유권자 등록 운동가 아말리아가 한 말이다. 그때 참 많이 찔렸다.

    IWFR에서 금년 9월에 미네소타 FR를 한단다. 그거랑 연결해서 지난 주에 지역 운동가 세미나 비슷하게 뭘 벌였다. 밥도 준다고 해서 따라가 보았더니, 세상에.. 이틀동안 세미나가 있는데 대부분이 유권자 등록에 대한 것이다. 첫 시간은 그래도 좋았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란 상식적이면서도 특정사회이슈에 집중하는 대부분의 단체들은 잘 논하지 않던 주제라던가, “유권자 등록과 소수민족의 정치 파워: 50년 계획” 같은 활동은 신선했다. 제일 인상 깊은 부분이 젤 첨에 시작하면서 아말리아가 “자, 오늘 모두에게 유익한 하루가 되기 위하여 일련의 원칙에 동의해 봅시다” 하며 제시한 다섯개 원칙이었다. 모 고용주들이 나름대로 기업 정체성 만들기 위하여 그럴 듯한 영어 단어를 조합해서 첫글자로 단어 만드는 것 있잖아. 모 3G라든지, 5E 그런거. 그래서 ROPES라고 respect,, (기억이 안 난다).. 해놓고선 Experience: 경험에 의지한 말을 하자 라고 했는데 이게 참 찔렸다. 기왕 나중에 이견이 있어서 싸울 것이면 논리가 그럴 듯해서 싸우거나 어디서 읽은 것 가지고 다투지 말고 일일 운동 경험에 입각한 자료로 토론을 하자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나같은 자봉자들은 참 무례한 불청객이다. 10년 이상 이지역에서 투쟁하고 있던 운동가를 자원해서 도우러 와서 쪼끔 일하다가 대뜸 하는 말이 “요걸 바꾸자”다. 학자들이 노조들은 옛날의 실수를 만회하고 이민자들을 적극 후원해야 될것이다 라고 하면 곧이 곧대로 믿어서 그걸 또 막무내가로 민다. 일은 벌려놓고 책임은 안 지는 형태다.

    경험에 의지한 글. 멀리 못 가지만 해 보긴 해봐야 겠다.

    2. 민족부터 까야겠다

    배운대로 착실하게 민족부터 까야겠다. 안더슨을 괜히 읽었나.

    3. 언어의 탈구조화를 지향

    한국어에선 Black, Negro, African-American, West Indian 이 죄다 “흑인”이다. 지난번에 딴지에서 누가 매트릭스에 대해 쓰면서 Af-Am 교수인 코넬 웨스트를 “아프리카-미국학 교수”으로 소개했다. 이는 일차적으로 African-American Studies가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면도 있겠지만, 다른 방면으로는 Af-Am을 아예 미국의 일부로 인식을 하지 않는, 개념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본다. 라티노, 치까노 chicano, 보리꾸아 boricua, 히스패닉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미국 원주민 (연방 정부를 상대로 법적 주권을 행사할수 있는)과 북미 원주민의 흐릿함도 문제이고. 재작년 오마이에서 “코시안” (korean+asian)이란 개념을 소개한 적도 있었다. 사회의 탄압을 견디다 못해 “코시안”이란 용어를 채택한 그쪽 ngo 사람들도 딱하지만 (한국이 일본이 다 되려고 하나보다. 지들은 아시아에 있지 않다고 우길려는 꼴을 보니) 거기에 kor 자 하나 들어갔다고 나라가 망한다느니 게시판에서 난 난리는 나중에 따로 보자.

    어디서나 억압받는 계층의 전략이 그렇지만 미국의 인종적 소수그룹들은 사회의 주류적 세계 및 언어관을 흡수하면서 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들에게 들이대어진 창을 거꾸로 돌려 자아 존재를 위한 논리 개발을 진행하여 왔다. 이러한 헤게모니의 내부 판갈이는 억압받으면서 사회 구조의 모순과 주류적 세계관의 불합리함을 직시할수 있는 이들이 이야기할 때 의미가 있는바, 한국에서 인종에 관한 언어적 경직은 미국통 백인들의 입김 말고도 이종차별적 구조의 피해자가 머릿수로 모자라는 것에 인한 것이 아닌가..의심이 된다.

    인종 인식의 다양화와 인종적 hegemonic discourse (이거 많이 써야 하는 표현인데 한글로 어떻게 되는지…) 는 독자적 언어체계를 갖추지 않고선 귀에 귀걸이에 국한되어 버릴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라티노 정치적 연대 어쩌구 쿠바인 냉전논리의 백인 어쩌구 해도 “남미-갈색피부-이국적 인간들”로 묶어버리는 기존 논리는 충분히 흡수할 역량이 있으며 기껏해야 표현 좀 더 배웠네로 끝나.

    고로 글을 쓰면서 기본 인종에 관한 한국어 단어들은 그 단어가 가리키는 방향이 주류적인 의미일 경우에만 쓰고 나머지는 모조리 영어로 대체하도록 한다. 혹시 한글 단어의 창의적인 응용 및 몽타쥬가 가능할 경우 자주 써서 대체 용어 생활화를 유도하고 (하지만 코시안 같은건 빼고) 정 고까우면 까스떼야노로 도배해 버리기로 한다.

    시작하기엔 충분하군.